[TV평] 알맹이 없는 '마약같은 드라마'
기사입력 1997년 03월 31일 14시 47분
또 `트렌디'인가.
TV `별은 내가슴에'가 방송 첫주만에 20%를 넘더니 최근 40%를 웃도는 고시청률을 올리며, 또한번 트렌디 붐을 몰고 있다.
얘기는 젊은 남녀가 나오고 질투가 있고 사랑이 있고 신분차가 있고, 그렇고 그런 얘기인데, 포장이 정말 굉장하다.
셀로판지같은 환상적 색조화면에 대사는 짧고 감각적이며, 카메라는 이리 쏠리고 저리 미끌어진다. 여기다가 매력적인 허스키보이스의 발라드가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매 장면은 나이트클럽, 패션쇼, 외제승용차에 고급스런 인테리어와 화려한 의상실에 고급 주택들로 정신없이 현란하다.
내용은 어떤가. 제작자가 미리 실토했듯이 일본만화 `캔디'와 `콩쥐팥쥐'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고아처녀가 남의 집에 들어가 갖은 고초를 다겪고 부잣집 `왕자'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미 알려진 만화와 전래동화를 기초로 했으니 앞으로의 얘기도 뻔할텐데, 이정도면 이건 `모티브' 정도가 아니라 복제다. 은 캔디고 조미령은 그대로 팥쥐다.
이러니 드라마를 보고나면 공허하다. 만화를 본뜬 결과이기도 하지만 50분동안 인물은 동떨어지고, 마냥 의상CF, 화장품CF, 외제자동차CF, 가구CF에 신곡발표까지 연달아 본 기분이다.
드라마는 유아기적 2분법으로 그려진다. 어른은 한심하고 고집스러운 `나쁜 나라 사람'이고, 시대의 총아인 청춘들은 때려부수고 욕을 하더라도 멋지고 순수한 `좋은 나라 사람'으로 그려진다.
대사도 생경하다. `쪽팔리게' `엿먹이냐'는 `극사실적인' 대사가 난무한다. 방송초에는 아버지가 아들을 요정에 데려가 총각딱지를 떼어주는 지극한 부성애 장면도 방송됐다. 갈데까지 간 패륜의 충격요법이다.
대상시청층을 10∼20대로 확실한 노선을 정한 드라마는 곳곳에 화려한 장면과 충격적 내용과 감미로운 음악을 장치하고 `이래도 안봐?'한다. `뭘 얘기할까'보다 `어떻게 만들까'에만 온 신경을 쓴 것 같다.
연속극에서 교훈에다 감동까지 기대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내용이나 인물하나에 공감할 구석은 있어야하는 거 아닌가.
한동안 잘 써먹은 트렌디를 다시 가공 재생시킨 `별은∼'는 `정신은 없고 코스튬만 있는' 빈 껍데기드라마다. 한번 보면 못끊는 달콤한 중독효과로 시청률은 올라가지만, 이와 정비례해 독성지닌 `마약같은 드라마'임에 틀림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