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평] 오락프로 속의 술판
기사입력 1997년 03월 27일 15시 10분
`술취한 TV'.
TV 오락방송이 더이상 갈데가 없는듯 마지막 비상구를 찾아 헤매고 있다.
TV의 그 어떤 오락프로그램보다 더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정치사회적 사건이 연일 터지는 가운데 오락프로그램은 이에 밀리지 않으려는듯 극약처방으로 술판을 벌이면서까지 시청자 끌어모으기에 나섰다.
지난 5일 첫방영된 2TV 심야토크쇼 `밤의 이야기쇼'에서 남녀 MC는 출연자 부부에게 "맥주 한잔 하겠느냐"면서 술을 권했고
아이들이 스튜디오를 돌아다니는 가운데 출연자는 춤을 춘뒤 술마시는 장면을 태연히 보여주었다.
또 TV의 심야토크쇼 ` 쇼'는 상설 칵테일 바를 스튜디오에 설치해놓고 일단 술과 관련된 연상작용을 심어주기에 애를 쓰고 있다.
지난 5일 칵테일토크편에서 모 여자 인기탤런트는 "연예인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술을 많이 마신다"면서 "알코올이 들어가긴 했나봐요, 말이 안나요"라는 멘트를 서슴없이 늘어놓기에 이르렀다.
또한 지난 9일 방영된 TV `아이 러브 코미디'의 `의 스타따라잡기'(OK목장편)에서는 출연진과의 회식자리에서 시작된 술잔이 소주잔에서 물컵, 맥주컵으로 바뀌면서
진행자인 은 모두 받아 마셨고 이때 `진짜 소주를 마시는 '이란 자막이 두번이나 방영됐다.
결국 은 춤을 추면서 "OK목장 대박(빅히트)날 것같다"는 멘트로 끝맺었다. 또 지난 17일 방영된 TV `OK목장'에서는 술병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 가운데 술대결의 장면이 나왔다.
이렇듯 종래 금기시되던 술마시는 장면들이 안방극장을 점령해버린 느낌이다. 이같은 마구잡이 술판방송은 청소년의 모방효과를 부추길 가능성을 안고 있다.
최근 프로그램의 연성(軟性)화 추세에 따라 부드러운 분위기를 위한 `소품'인 술이 등장하는 것은 얼핏 자연스러울 수 있겠으나 TV는 여타매체와 다른 특성을 가진 가족매체다.
한켠에서는 음주소비문화를 경계하는 교양프로그램을 방영, 로부터 상을 받는가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아랑곳없다는듯 이중성을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TV천국이라는 미국에서 TV술광고가 금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난감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