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악귀상륙 (17)
기사입력 1997년 03월 10일 14시 02분
바위산에 돌아왔을 때는 저녁무렵이었다. 숙소로 삼고 있는 굴에 들어선 순간 윤의충은 움직임을 멈췄다. 굴안이 깨끗해진 것이다.
위쪽에 쌓여졌던 거적더미가 치워졌을 뿐만 아니라 아래쪽에는 제법 깨끗한 짚이 가지런히 깔려져 있다.
뒤쪽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거적이 들쳐졌다. 들어선 사람은 낭중 오준의 며느리라는 여인이다. 그녀는 양손에 두개의 바가지를 들고 있었다.
"장군. 저녁을 가져왔습니다."
여인이 다소곳한 태도로 말했다.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겼고 얼굴도 깨끗해서 비록 넝마를 걸쳤지만 여자의 자태가 보였다.
윤의충의 앞에 바가지를 내려놓은 그녀는 옆으로 돌아 앉았다. 윤의충이 보리밥에 찔려진 수저를 빼 들었다.
찬은 다른 바가지에 들었는데 소금에 절인 나물과 시커멓게 구워진 생선이 두마리나 넣어져 있다. 성찬이다.
사금으로 보리쌀을 바꿔온 덕분으로 바위산의 굴에 살고 있던 백여인의 부랑민은 이제 주림을 면하게 되었다.
거적 밖에서 희미하게 웃음소리가 났고 밝은 목소리도 들려왔다. 순식간에 바가지를 비운 윤의충에게 여인이 사기병을 내밀었다.
"곡주를 얻어왔습니다."
"다음은 옷을 벗을 차례인가?"
술병을 받으며 묻자 그녀는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만척을 따라 로 가지 않았다. 가지 않겠다는데 굳이 끌고 갈 이유도 없는 것이다.
잔 따위는 있지도 않았으므로 윤의충은 병을 기울여 곡주를 서너모금 삼켰다.
"이것으로 보답은 되었소."
손등으로 입가를 씻은 그가 입술로만 웃었다.
"그리고 인연은 이것으로 자릅시다."
"저 아이는 내 남편의 자식이 아닙니다."
문득 터진 그녀의 말이 굴안을 울렸다. 윤의충의 시선을 잡은 그녀가 말을 이었다.
"물론 내 배로 나은 자식이지만 아비는 이름도 모르는 놈이오."
"…."
"허나 이제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내 피가 반이 섞였으니 내 자식으로 키울테요. 장군 말씀대로 구멍을 팔아서라도 기르겠습니다."
여인이 손을 뻗어 빈 바가지를 쥐었다. 벽에 걸린 관솔불이 괜히 굴안의 공기에 흔들리면서 여자의 얼굴에 음영을 만들었다.
그리고 여자의 밝은쪽 볼에 반짝이는 눈물 줄기가 드러났다. 윤의충은 마악 일어서려는 여자의 소매를 잡았다. 그저 잡기만 했는데도 여자는 허물어지듯 주저 앉았고 윤의충의 가슴으로 상반신이 안겨졌다.
다시 관솔불이 커다랗게 일렁거렸다. 여자는 허둥거리는 손길로 저고리와 바지를 벗었는데 이미 눈빛은 허공에 떠있다. 윤의충은 가슴 가득히 안은 그녀를 짚더미 위에 쓰러뜨렸다.
여자가 서두르며 자신의 바지를 벗기려다가 서로의 손이 얽혀졌다가 풀렸다. 이윽고 윤의충은 그녀의 깊은 곳으로 들어섰다.
여자는 흐느껴 울고 있었다. 그것이 왜 인지는 모두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