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승부앞엔 우정도 사치
기사입력 1997년 03월 08일 15시 28분
`우정(友情)은 라커룸에 두고 나와라！' 농구코트 안에서는 우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미국프로농구(ＮＢＡ) 선수들이면 누구나 공감하는 비정한 현실이다. 시카고 불스의 마이클 조던과 휴스턴 로키츠의 챨스 바클리는 오프 시즌이면 가장 자주 만나는 골프 친구지만 코트에서는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다. 조지타운 대학 동창인 `센터 3인방' 패트릭 유잉(뉴욕 닉스)과 알론조 모닝(마이애미 히트) 디켐베 무톰보(애틀랜타 호크스)는 학교를 같이 다닌 선후배답게 시즌이 끝난 뒤에는 항상 함께 운동을 한다. 그러나 일단 코트에 나서면 이들은 서로가 `철천지 원수'를 만나기라도 한듯 처절한 다툼을 벌인다.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가드 레지 밀러는 "일단 코트에 들어서면 살상(殺傷) 본능을 지녀야한다. 우정은 코트 밖에서의 일"이라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다. ＮＢＡ 선수들은 이같은 밀러의 말에 철저히 동의하고 있다. 선수가 경기를 하는 것은 철저한 비즈니스인 탓에 사적인 우정 따위를 개입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정은 물론 피를 나눈 형제애도 코트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워싱턴 불리츠의 하비 그랜트와 올란도 매직의 호레이스 그랜트는 언뜻 봐서는 쉽게 구별을 할 수 없는 쌍둥이 형제. 그런데 이들은 8년전 처음으로 코트에서 격돌한 날의 일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시카고 불스의 유니폼을 입고 있던 형 호레이스 그랜트가 단독 찬스를 잡고 골밑으로 대시하자 다급해진 동생 하비는 형의 팔을 잡아 플로어에 쓰러뜨렸다. 시카고의 팬들은 코트에 나동그라진 호레이스의 이름을 외치며 하비에게 야유를 퍼부었지만 하비는 일어서는 형의 어깨를 툭 치는 것이 `사과표시'의 전부였다. NBA에서는 절친한 친구끼리의 격렬한 충돌도 예사롭게 일어난다. 왕년의 스타 윌트 체임벌린과 빌 러셀은 추수감사절과 같은 `명절'에는 가족들이 함께 식사를 할 정도로 친한 사이지만 코트에서 만나면 "우리가 언제 아는 사이였느냐"는 듯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가 하면 오스카 로버슨의 부인은 남편이 스내치 샌더스와 샘 존스 등을 집으로 초대해 저녁 식사를 대접한 다음날 경기에서 이들로부터 고의적인 파울을 당해 코뼈가 부러지는 것을 보고는 "이들이 다음에 또 우리집에 식사를 하러 오면 음식에 독을 타겠다"는 말을 했을 정도다. 매직 존슨과 아이제야 토마스의 싸움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죽마고우인 이들의 우정은 지난 88년 NBA 챔피언 결정전에서 ＬＡ 레이커스와 디트로이트 피스톤스가 만나면서 완전히 깨져버렸다. 경기 전까지만해도 뺨을 맞추며 우정을 과시했으나 경기가 과열되면서 골밑을 파고드는 디트로이트의 토마스를 LA의 매직이 코트에 메다 꽂아 주먹싸움 직전까지 갔다. 이들이 다시 화해하는데는 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프리에이전트 제도로 선수들의 이동이 잦은 요즘은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으로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매직 존슨의 말처럼 "우정은 라커룸에 두고 나오라"는 것이 ＮＢＡ의 `불문율'이 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