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공화국] 대통령의 고뇌 (5)
기사입력 1997년 03월 06일 15시 19분
깊은 적막과 어둠은 만 감싸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통령 선거와 취임이라는 축제를 치르면서도 국민들은 `경제몰락'의 불안과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천문학적 자금이 송두리째 손실된 곳은 `한보' 하나만이 아니었다. T.G.V 경부고속전철이 그랬고, 부실공사의 지하철, 관리소홀의 기반시설 모두가 `노름돈'처럼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외채는 쌓여만 갔고 수출은 시간 시간 줄어만 가고 있다. "각하." "말해요." "국민들 여론이 심상치 않습니다." "?" "전임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겁니다." "어떻게！ 또 전직 대통령을 불명예스럽게 해야 한다는 거요? 이제 그런 일이 다시 생기면 나라는 완전히 무너집니다. 국민을 설득시키고 미래만 바라보고 뛰도록 독려해야 합니다. 나는 내 손으로 두 전직 대통령을 꺼내왔소. 앞으로는 경제와 국방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 안할겁니다. 만일 내 측근에서 부패한 인물이 나타난다면 큰일날 줄 아시오." 여당 출신도 야당출신도 없다. 국가에 도움되는 인물이라면 누구든 과감히 기용할 것이다. 그리고 파벌정치를 완전히 소멸시킬 것이다. `냉소의 '를 `희망의 '로 만들 것이며 해묵은 지역감정도 깨끗이 청산할 것이다. 사실상 낙후된 호남지역도 적극 개발할 것이며 그간의 깊은 상처를 따뜻이 포옹할 것이다. "국민들 마음을 결속시키는 상징적인 작업 하나를 먼저 시작해야겠습니다." "…." "독립기념관 내에 역대 대통령 기념관 하나 마련토록 연구해요. 대통령부터 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고 민족의 자긍심을 심도록. 거창하게는 말고 소박하고 분명하게." "알겠습니다, 각하." "내일은 일요일이니 쉬시고 월요일 아침 여섯시에 출근해줘요. 각료임명에 관한 준비물 지참하고." 비서실장이 돌아갔다. 벌써 새벽 1시가 되었다. 의자에 몸을 파묻으며 그는 깊은 사색에 잠겼다. "YS는 정말 좋은 기회를 놓쳤어.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와 성원 속에서 출발했는데…. 왜 좀더 눈을 크게 뜨고 귀를 넓게 열지 않았는지…." 전직 대통령. 침대에 눕기는 했지만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리고 누운채 통한의 눈물을 뿌리고 있었다. 대통령. 평생의 소원이었고 그 소원을 이루기는 했지만 퇴임하면서 따가운 국민들의 시선 외에는 남은 것이 없었다. "정말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고 싶었는데…. 겨우 경제몰락의 대통령으로 남게 되다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