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근] 튀김전문점 주방장은 일본어 강사
기사입력 1997년 02월 25일 15시 02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튀김전문점 샤부센에서는 매주 한번씩 일본어 회화 강습이 열린다. 학생은 모두 이 식당의 종업원들이다. 강사는 유니폼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주방장 이성근씨（37）. 이씨는 지난해 7월부터 일본어 강습을 해오고 있다. 샤브샤브와 튀김전문점이다 보니 일본인 손님이 많아 친절 서비스를 위해 21명의 전 종업원이 모두 일본어로 인사와 접대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시작한 강습이다. 그렇다고 이씨가 일본어를 전공한 사람은 결코 아니다.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함안농고를 졸업한 뒤 로 건너가 일식집에서 `칼질'을 배운 전형적인 주방장이다. 그런 이씨가 일본어를 일본사람처럼 하게 된 것은 순전히 프로의식 때문이다. 기왕에 일본요리를 하려면 본토에서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일본어학원을 다닌 뒤 일본으로 건너가 의 튀김전문점 덴구니（天國）에 취직, 일본어와 튀김요리를 한꺼번에 배웠다. 이씨는 귀국해 취직한 뒤에도 요리박람회 등 일본에서 요리에 대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택시 타듯이 비행기를 타고 일본을 넘나든 게 `일본어 야학'교사가 된 비결이다. 이씨는 팔자에도 없는 일본어 강습을 위해 식당에서 꼭 필요한 문장을 대학노트에 직접 펜으로 빼곡히 적은 교재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이씨의 프로의식은 컴퓨터를 동원한 고객관리에서도 번뜩인다. 손님과 자주 대화를 나누는 일식당 주방장의 특성을 깨달은 이씨는 컴퓨터학원을 다니며 `고객 관리프로그램'을 짜 단골손님의 개인파일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기업의 회장실이나 사장실로 전화를 걸면 가장 잘 바꿔주는 게 바로 단골식당 주방장이에요. 문안전화도 걸고, 좋은 재료가 들어오면 오시라고 연락도 하죠." 또 손님들이 주로 골프 이야기를 하자 말상대를 하기 위해 배운 골프가 어느새 보기 플레이어가 됐다. 물론 신문과 시사잡지, 교양지 등은 필독이다. 이처럼 프로의식으로 무장하다보니 단골손님도 많아 굵직한 회사 최고경영자와 김혜수 이병헌 등 연예인, 농구선수 허 재 서장훈 등이 이씨의 `팬'이 됐다. 이씨는 또 주방장을 떠나 요리와 마케팅을 접목시킨다는 차원에서 쇠고기 샤브샤브에 상추쌈을 곁들인 4천500원짜리 점심메뉴를 비롯해 버섯 쇠고기 샤브샤브, 바닷가재 회와 각종 해물을 먹을 수 있는 해물샤브샤브를 개발하기도 했다.
연봉 6천만원에 2년 계약 조건으로 수천만원에 이르는 계약금을 받는 `일본어강사 주방장' 이씨는 오늘도 무스를 바르고 압구정동을 나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