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국가대표급 엿장수 됐어요
기사입력 1997년 01월 21일 15시 42분
`일본 유학생 출신의 엿장수.' `팔도 엿장수' 심재은씨（30）의 이색경력이다. 심씨의 직업은 전국 장마당이나 백화점 등 각종 유통업체에서 각설이쇼, 풍물놀이 등을 벌이며 엿을 파는 엿장수. 하지만 심씨는 지난 93년만 하더라도 일본 외국어전문학교에서 호텔경영학을 수료한 앞길 창창한 관광학도였다. 그런 심씨가 엿장수로 급선회하게 된 것은 가업 때문. 귀국해 취직하기 전 엿장수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부친 심명전씨（54．중요 무형문화재 3호 남사당 이수자）를 잠시 돕다가 녹아내리는 엿가닥처럼 장돌뱅이 업계에 눌러붙게 됐다. "처음에는 딱 6개월만 아버님의 엿파는 일을 도와드리기로 했죠. 그런데 이어받은 끼는 속일 수 없었나봐요. 엿장수 가위장단과 북, 장구, 징 등에 맞춰 신명나는 춤사위로 엿을 팔다보니 점차 그만두기 어렵더라구요." 물론 부친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일본에 유학까지 보낸 장남이 자신의 뒤를 이어 엿장수가 되는 것을 그냥 볼 수 없었던 것. 그래도 자식에게 당할 부모 없다고 아들의 뜻을 꺾지 못한 부친은 "이왕 엿장수가 되려면 제대로 되라"며 사물장단과 악기다루는 방법, 각설이쇼 등의 레퍼토리를 제대로 전수해줬다. 심씨는 엿장수를 하면서 부친을 도와 `유랑 엿장수' 30여명으로 구성된 이벤트업체 `쇠울림'을 운영하고 있다. 각종 행사장에 출연료를 받고 나가 다양한 볼거리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엿도 파는 `꿩먹고 알먹는 기업형 엿장수'로 탈바꿈한 것이다. 작년만해도 무역진흥공사의 초청으로 프랑스 파리와 리옹 무역박람회에 `국제 엿장수 자격'으로 참가한 것을 비롯해 일본 후쿠오카 박람회에도 나가 관람객들로부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해외공연에서 워낙 반응이 좋다보니 가지고 나간 엿장수 가위와 각종 악기, 바지저고리 등 소품 등을 팔라는 현지인들의 등쌀에 배겨나지 못한다. 심씨가 파는 엿은 인천공장에서 납품받는 것이지만, 원료와 제조방법은 전통적인 호박엿 그대로다. `엿장수'답게 심씨는 좋은 호박엿을 고르는 방법에 대해서도 침을 튀긴다. 첫째 입안에 달라붙지 않아야 하고, 은근한 향이 퍼져야 하며, 딱딱하게 굳은 상태라도 일단 입안에 들어가면 금세 흐물흐물 녹는 것이 진짜 호박엿이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