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타일기] 정 홍 채 (14)
기사입력 1997년 01월 15일 16시 43분
내 별명은 주로 `코끼리'나 `슈퍼맨'처럼 멋있는게 많지만 한때는 `짜장면'으로 통했다. 지방공연때 극단에서 주는 식대 9천원을 아껴 자장면 한그릇으로 하루를 해결하고 남는 돈은 저녁때 후배들과 술을 마시는데 썼기 때문이었다. 93년 `세일즈맨의 죽음' 대구공연을 할 때는 공연을 마치고 무대에서 졸도해 버린 일이 있었다. 마침 선배가 갖고 있던 우황청심환으로 응급조치를 해 간신히 깨어났는데 영양실조였다. 그 무렵 사랑하던 한 여인과 헤어져 나는 정신적으로도 괴로웠다. 87년 연극무대에 뛰어들어 6년여.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행복에 항상 스스로 떳떳했지만 조금 지치고 외로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무렵 한줄기 빛이 비쳤다. 바로 임꺽정의 운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 95년 5월 김한영PD를 만나 그해 9월 촬영이 시작되면서 내인생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단순히 연극무대에서 카메라 앞에 선다는 사실 이상의 커다란 전환이었다. `임꺽정'은 사시사철을 모두 화면에 담고 있다. 그만큼 촬영이 어려웠다는 말이다. `임꺽정'을 찍으면서 부상을 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만 나도 여러번 다쳤다. 나는 특히 말에서 많이 떨어졌다. 말은 예전에도 조금씩 탔지만 임꺽정이 되면서 정식으로 배웠는데 곧잘 타다가도 가끔씩 말이 말을 안들어 고생할 때가 있었다. 한번은 신나게 달리다 말에서 그대로 머리부터 고꾸라져 잠시 반신마비가 된 적도 있었다. 반나절동안 부지런히 마사지를 한뒤 간신히 살아났다. 또 한번은 얼음이 풀릴 무렵 땅이 녹으면서 말의 발이 꼬여 쓰러져 다리를 다치기도 했다. 혼자 칼춤을 추며 너무 재주를 피우다 무릎을 베어 6바늘을 꿰맨 적도 있었다. 그리고 화살에 다리를 맞아 피를 줄줄 흘리기도 했다. 이 모든 부상과 강행군 속에서도 한가지 흐뭇한 사실이 있다면 결코 촬영을 펑크낸 적이 없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