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작은 거인 정종실씨 ♣
기사입력 1997년 01월 13일 16시 16분
`거리의 목자（牧者）' `새벽의 천사' `선행의 등불'. 전주시의 대표적인 문화재인 풍남문을 지키는 정종실씨（鄭鍾實．64）의 또 다른 별명이다. 정씨는 국민학교 중퇴의 학력에 어릴적 질병으로 키 1m49, 체중도 35㎏에 불과한 왜소장애를 안고 있다. 1천만원짜리 전세에 살며 오히려 도움을 받아야할 처지이지만, 정씨의 삶은 `작은 거인'을 연상시킨다. 배우지 못한 한（恨）과 가난의 아픔이 뼛속 깊이 사무친 정씨는 풍남문 주변을 청소해 수집한 빈병을 팔아 모은 돈과 박봉의 감시원 봉급을 쪼개 정기적으로 양로원과 고아원, 벽지학교 등에 전달해 왔고 회갑때 선물받은 금반지와 축의금도 고스란히 고장에서 열리는 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 사무국에 기탁했다. 독립기념관이 건립된다는 소식을 듣고 전북 도민가운데 1호로 성금을 맡긴 것도 정씨다. 지난 60년부터 아무도 보살피지 않던 사적 풍남문을 지켜 온 정씨는 처음 17년간을 무보수로 일했다. 전주시로부터 일당을 받기 시작한 뒤로도 풍남문의 연혁을 적은 전단 1만부를 자비로 제작해 방문객들에게 나눠주고, 역시 사비로 풍남문 주변의 전기시설을 갖추는 등 `내것'에만 집착하지 않는 삶을 계속해왔다. 정씨는 아랫니가 2개 밖에 남아 있지 않다. 풍남문의 훼손을 막으려 한밤중 취객이나 불량배들과 몸싸움을 벌이다 빠진 것이다. 전주시청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부인은 처음 한동안 남편의 무소유에 가까운 삶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적극적인 후원자가 됐다. 정씨부부는 이런 가운데 두아들을 신학대학원까지 공부시켜 어엿한 예비목회자로 키워놓았다. 선행이 남다르다보니 교육부장관상을 비롯해 36차례의 봉사표창을 받기도 했다. "일할 힘이 남아 있는 그날까지 풍남문을 지키고 싶습니다. 아직 제 도움을 기다리는 손길이 많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