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검무정]<제19화>대륙의 기인들(21)
기사입력 1996년 09월 05일 14시 00분
벽에는 각양각색의 얼굴이 걸려있는 게 아닌가.
늙어 쭈글쭈글한 주름살의 얼굴.
영준한 얼굴.
보드라운 피부의 여인네 얼굴.
수 십 종의 걸려있는 얼굴들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피면구였다. 소영은 그 중에서 청수한 중년의 면구를 떼어냈다.
"상공은 앞으로 이 인피면구를 착용해야해요."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소야다.
"왜 그래야 하는거요?"
조소영은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술술 늘어 놓았다.
"그럴줄 알았어요. 늘 경계하던 위험도 잊어버렸군요. 생각나지 않아요?당신은 가문의 보물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중원무림 연맹을 비롯한 전 무림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 헤매고 있어요. 그들은 당신을 발견하자마자 죽이려 할거예요. 혹시나 발각되면 큰일이죠."
"가문의 보물이라니?"
"바로 이거예요."
소영은 품안에서 동전만한 은패를 꺼내 내밀었다. 비마(飛馬)가 양각된 영패.
"이것을 무림인들이 노린단 말이요?"
"그래요."
"필경 내력이 있는 물건이겠군."
"그럴거예요. 가문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유일한 은패이니 조심해서 보관하도록해요."
이소야는 칸(王)의 신물을 가문의 보물로 알고 소중히 갈무리하였다. 그러자 조소영은 즉시 중년의 인피면구를 이소야에게 착용시켜 준다.
이소야는 이제 정말 사라졌다.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되었다. 고독한 허무의 몸짓에 냉정해 보이던 무심한 얼굴은 감춰졌다.
그저 평범해 보이는 중년문사.
"이제 누구도 당신을 알아보지 못할거예요."
"내 이름은...?"
"무명객(無名客)이라고 해두죠."
"아니...본명 말이요?"
조소영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준비해둔 모양이었다.
"용진후(龍眞厚)!"
이소야는 용진후를 입안으로 되뇌어 보지만 전혀 낯설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아득한 기억.
조소영은 다시 이소야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지하밀실을 벗어나 지상으로 올라왔다. 눈이 부셨다. 하늘은 청명했고 낙엽이 날리고 있었다.
이소야는 마치 하늘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올려다 보았다. 산과 나무, 땅도 유심히 살폈다. 역시 눈에 익은 것은 없었다.
기억은 깡그리 지워진 것이다. 조소영이 이소야의 손을 가만히 잡아 주었다.
"사실 이 깊은 계곡까지 방문할 사람은 없어요. 안심해도 될거예요."
모옥이 심산유곡에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조소영의 말은 틀렸다. 방문객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바로 이소야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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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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