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검무정] <제19화>대륙의 기인들(19)

기사입력 1996년 09월 03일 17시 40분


황당한 질문이 아닌가. 본인도 모르는 내력을 이들 부녀가 어찌 알 수 있으랴. 조소영은 인내심이 강한 아이가 아니었다. "당신은 당신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잃어 버렸나요?" 이소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난…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소." 조소영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떠 올랐다. "내 얼굴도 떠오르지 않아요?" 이소야는 그녀를 가만히 응시했다. 깜찍한 용모였다. 미소를 보일때 마다 상큼 드러나는 보조기는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물론이요." 조귀천을 가리켰다. "이 분이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이소야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렇소." 조소영은 정감이 담겨있는 눈빛을 이소야에게 고정시키며 침상에 걸터 앉았다. 그녀는 이소야의 가죽옷을 매만져 주었다. "불행한 분. 당신의 빙장(聘丈)도 알아보시지 못하다니…." 맙소사. 조귀천이 이소야의 장인이라면 그녀 조소영은 당연 이소야의 부인이란 뜻이 아닌가. 이소야의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빙장 어르신?" 조귀천은 근엄한 신색에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침통하게 말을 받았다. "그래. 하나뿐인 사위가 이지경이 되어 참으로 가슴 아프네. 그렇지만 생명을 잃지 않은 것만도 천우신조일세." 이소야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그럼…부인은?" 조소영이 웃음지었다. 여전히 보조개는 예쁘다. "저 말고 또 누가 있겠어요." 그녀를 훑어보는 이소야의 표정이 점차 변해갔다. 다분히 어이없는 얼굴. 믿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매우 어렸고 그보다는 너무 생소했다. "난…." 소영이 이소야의 말을 가로 막았다.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인가요? 내가 당신의 아내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소야는 더듬거렸다. "미…안하지만 전…혀 느껴지지 않소." 조귀천이 탄식을 토했다. "천하의 명의라는 내가 하나뿐인 사위의 기억상실을 치료하지 못하다니 참으로 부끄럽도다." 조소영이 돌연 부친에게 매달려 애원하기 시작했다. "흑… 모든 정성을 다하여 깨어나도록 간호하였거늘 이제 무슨 소용이에요. 가장 사랑해주던 소영마저 알아보지 못하시니 난 어쩌란 말인가요. 아버님… 제발 우리 낭군님을 살려주세요. 예전으로 돌아가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