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비안 나이트] 상전과 하인의 음식이야기
기사입력 1996년 08월 19일 14시 34분
돈의 단위 중 억은 억! 소리 나올까봐, 조는 조용히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서민들은 입에 떠 올리지도 못한다. 그런데 한해에 무려 7조라는 돈이 마구 버려지고 있단다. 아니 좀 더 정확 하게는 일부러 썩게 둔다고 한다. 무슨 돈이냐구? 우리가 버리는 음식 쓰레기 값이다.
버리는 것 중 음식 쓰레기는 아깝지 않게 생각한다는데, 주걱으로 귀싸대기를 맞아도 좋으니 밥알 좀 얻어 먹었으면 하고 바랐던 옛가난이 한이 돼설까. 음식찌꺼기를 남기지 말고 다 먹자는 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사실 이 음식도 산해진미라는 이름으로 상위에 있을 때 가치가 있는 것이지 남겨진 것이나 흘린 것은 미관상 위생상 영 좋지가 않다. 남은 음식을 가축사료나 퇴비대용으로 쓰기도 하나 사람과 다른 동식물은 식성이 맞지 않아서 썩 좋은 먹이가 되는 것도 아니란다. 자칫 음식 찌꺼기를 아깝다고 먹다가 식중독을 일으키는 예가 여름철엔 참 많다. 먹던 음식 다시 먹다가 탈이 난 이야기-.
옛날엔 주인이 식사를 하고 나면 그 상을 종들이 물림으로 먹곤 했는데 이 집에서는 상전이 자기의 하녀마저도 하인에게 물려 줬다. 그런데 먹던 음식은 남 줘도 아깝지 않았는데 어찌어찌하던 하녀를 주자니 아까 웠을까, 이 나리님 지금은 지아비가 된 종이 안 볼 때 슬쩍슬쩍 하녀의 방을 들락거리는 것이 아닌가. 대개의 종은 무식한 법인데 이 하인은 대학원까지는 이수를 했는지 주인나리 에게 침착하고 정연하게 이런 논리를 펼친다. "마님! 식사 중에 전화 통화라도 하고 나면 다시 수저를 대고 싶으시던가요?"
"잠시라도 뒀던 음식은 영 식욕이 당기지 않는 법이지"
"그럴진대 마님은 아예 버린 음식을 다시 드시려 하더군요"
"그럴 리가 있나! 한 번 버린 음식은 두 번 다시 보기 싫은 게야."
"마님은 그러지 않으시던데요…."
"무슨 소릴 자꾸 하는 게냐? 듣기만 하여도 구역질이 나는 데."
"소인의 처는 마님댁에서 오래 일한 덕에 얻은 물린상 같은 겁니다. 그런데도 마님은 계속 기웃거리시니…." 이 말에 마님은 두 번 다시 하인의 아내를 기웃거리지 않았다는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