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카스배 천원권]○안조영2단●윤기현9단 ♣
기사입력 1996년 07월 29일 17시 53분
제1보 (1~18)=9단과 2단의 대결. 윤기현 9단은 올들어 기사생활 37년째를 맞았고 안조영 2단은 입단 3년차다. 원로와 최신예의 대국은 고대로부터 꾸준히 이어온 바둑기예의 발전을 극명하게 대변해준다.
9단은 더이상 오를 곳이 없는 최상층, 입신(入神 :9단의 품계)의 경지에 자리잡은 기사이고, 2단은 이제 막 수졸(守拙: 초단의 품계. 졸렬하나마 제 몸을 지킬 줄 안다는 뜻)을 벗어나 약우(若愚: 2단의 품계. 어리석은 듯하나 움직일줄 안다는 뜻)계단을 오르기 시작한 기사이다.
단위제가 처음 도입된 시기라면 접바둑을 두어야 할만큼 큰 차이지만 충호선제가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지금은 호선도 만만치 않은 처지. 아니, 9단진이 가장 꺼리는 상대는 같은 고단자들이 아니라 이런 병아리기사들이다. 병아리는 병아리로되 하나 같은 첨단기예로 중무장한 슈퍼병아리니까.
돌을 가려 윤 9단이 흑을 쥔다. 그리고 평범한 1,3 양화점. 10년 전에는 `호방하다'는 평가를 받았을 화점포석이 지금은 동네 꼬마들도 알고 있는 의 기마자세처럼 진부하게 느껴진다.
백 4의 3.三은 60년대의 `면돗날' 사카다, 7~80의 `불꽃' 조치훈이 즐겨 구사하던 극단적 실리포진. 다분히 복고적인 이 포진이 오히려 신선함을 준다. 바둑은 둘수록, 볼수록, 느낄수록 인간세상과 같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는 늘 그립고 신선한 기억으로 남는 법이다.
우상귀 백 8부터 흑 15까지 화점 기본정석을 거쳐 백의 `실리'와 흑의 `세력'구도. 요즘의 신예들은 안2단과 같은 실리파가 많다. 그것도 하나의 유행으로 봐주어야 할 지 모르겠다.
이창호의 등장 이후 철저한 계산을 바탕으로 한 실리바둑이 득세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한데 바둑의 품격을 중시하는 몇몇 원로기사들은 `신예들이 지나치게 눈앞의 승부에만 집착해 모양을 잃고 있다'며 우려한다.
바둑은 승부의 이면에 정신을 갈고 다듬어 인격을 함양하는 `도(道)의 이상이 깃들어 있는 세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기(技)와 예(藝)의 정신이 조화를 이룰때 보다 크고 넓은 세계가 열린다. 우리는 그것을 개안(開眼)이라고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