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수첩]
기사입력 1996년 07월 26일 14시 29분
## 베트남 난민 니란 '아메리칸 드림' `니란 르'는 아직도 1975년 조국을 떠나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사이공이 함락되기 직전 10세짜리 소녀 니란의 11명 대가족은 빈 몸으로 간신히 미국행 비행기를 얻어탔고 불바다이던 사이공을 떠났다.
그리고 21년 후 니란은 새로운 조국 미국을 대표하는 올림픽 펜싱선수로 제2의 고향 애틀랜타에서 벌어진 올림픽에 우뚝 섰다.
미국에서의 21년은 니란의 가족에게는 끊임없는 생존과의 투쟁이었다.
78년 니란의 부모는 `차지오'라는 월남음식점을 애틀랜타에 열고 9남매의 생계는 물론, 아이들의 미래를 음식점에 걸었다.
주 7일, 평일은 15시간, 주말은 13시간씩 식당을 운영했고, 9남매는 교대로 식당 일을 도왔다. 니란의 부모는 돈을 모으지는 못했지만 9남매를 모두 대학까지 졸업시켰다. 21년 동안 가족동반 나들이를 딱 한번 갔을 정도로 미국은 꿈과 희망의 나라만은 아니었다.
스포츠에 시간을 쏟을 여유가 없었던 니란이 처음 펜싱을 택한 것은 19세 때였다.
1m57의 왜소한 체격이지만 에페에서 발군의 실력으로 31세의 나이에 미국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하게 됐다.
니란의 부모가 자랑스런 딸의 경기모습을 지켜본 것은 최종선발전 딱 한번이었다.
니란의 훈련비용은 식당에 마련된 자그마한 기부금 상자에서 나온 잔돈들과 가족들이 직접 만든 T셔츠를 판 비용으로 감당해야 했다.
개막식에 니란은 당당히 미국대표로 행진했지만 비싼 입장료 때문에 부모는 TV를 시청했으나 딸의 모습을 끝내 찾지는 못했다.
그러나 다행히 딸의 경기가 일요일 오전 8시에 열려 어머니 항티르와 투루엔테팜은 니란의 경기를 직접 관람할 수 있었다.
아쉬운 13대15의 패배에 이어 잠시 딸을 위로할 사이도 없이 부모는 식당 문을 열기 위해 운동장을 떠났다.
패배후 니란은 "최선을 다했고, 미국을 대표했다는 기쁨,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자랑스런 미국인이 됐다는 기분이 감격스럽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사실 올림픽은 출전이라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선수들에게는 비길 수 없는 영광이어야 한다.
그러나 니란과 그녀의 가족들에게 이번 올림픽은 세계 최대의 스포츠제전 이상의 또 다른 의미를 가져다 준 소중한 약속이었다. < 민훈기 애틀랜타 특파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