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소설> LOVE LOVE LOVE.....이규형(41)
기사입력 1996년 07월 17일 15시 15분
--- 아름답고 따스한 사랑 (3) ---.
"나를 좋아한다고? 한번도 만나지 않은 날 어떻게 알고...".
처음엔 제자의 아부성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말로 들어보니 그게아니었다. 이모집 즉, 사촌누나의 집은 같은 아파트 바로 옆동인데 그녀는 일주일에 몇번씩 집엘 온단다. 그 이유는 "오늘은 그 역사선생이 무슨 얘기를 했냐?"가 첫째라는 것. 그래서 그 자신이 수업시간에 한 얘기를 전하면, 그녀는 틀림없이 웃고 깔깔 넘어가고 재미있어 하다간 늘 덧붙여 말하길 "우리나라엔 앞으로 그런 선생들이 필요하다"고 심각해진다는 거다.
한마디로 그의 팬이라는 것이 녀석이 전하는 사연. 만나게 해달라고부탁한 것도 실은 그녀쪽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
"우리나라엔 그런 선생이 필요해." 그녀가 했다는 그 말을 곱씹어보면 황공하기 짝이 없고, 궁극적으로 그녀는 그를 선생으로 좋아한다는 얘기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약속장소인 J호텔 커피숍을 향해 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마음을 정했다.
깎자, 요번 기회에 깎자. 오늘은 일단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자.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선생같은 모습을. 까짓것 마음이 바뀌면 또 길러서묶으면 되는거지.
그는 눈에 띄는 2층의 그럴싸한 미용연구소(?)로 들어갔다.
커피숍은 넓기는 하지만 한눈에 들어오는 지라 별 신경을 쓸 필요는없었다. 제자녀석은 장담했다. 들어오는 여자 중에 제일 예쁜 여자를 찍으면 그 여자가 자기 누나라고.
녀석은 케네디 대통령처럼 신념을 갖고 연설을 해대지 않는가. 거기다가 더 이상의 확인을 할 필요가 없는 그녀의 트레이드마크는 완벽한 클레오파트라 헤어스타일이라는 것. 고대의 단발머리 컷 스타일 말이다.
그는 앉은채 여자들의 머리스타일만 보면서 30분을 죽였다.
"이 자식이 장난친 거 아닌가.".
왠지 그런 불안감이 들면서 갑자기 자기를 골려 먹기 위해 작당한 제자녀석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에헤헤...선생님 속았지요. 이왕 이렇게 나오셨는데 호텔 식당에서돈가스라도 하나씩 썰게 해주세요. 그러면 다음번엔 진짜 예쁘고 따스한우리 칠촌 누나를 드릴게요. 낄낄....'.
만약 그런 꼴이 된다면 학교에서도 얼굴 팔리는 톱뉴스, 보통 낭패가아니다.
그는 물론 수업시간에 들어갈 때마다 애들에게 농담으로 여자얘기를 해댔었다.
"아름답고 따스한 여자를 누나로 갖고 있는 놈들은 말하라. 물론 누나가 아니라도 좋다. 이모나 고모라도 좋다. 나한테 그런 의리를 지키는 제자는 내가 인생의 3분의1을 책임지겠다.".
그런 얘기를 반마다 들어가며 했지만 실제로 제자녀석의 말을 믿고이렇게 나온건 처음이다. 처음부터 이 건에 관한한 뭔가 굉장한 예감이있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