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카스배 천원권]○최규병 7단 ●유창혁 9단
기사입력 1996년 06월 28일 15시 04분
**드디어 좌하귀에 승리의 첫눈이 … 제10보(103~112)=백 104, 106, 108은 이 바둑의 하이라이트. 프로의 대국관(大局觀)을 유감 없이 보여준 가착(佳着)이다. 사실, `이기려면 버려라'는, 이제는 진부하기조차 한 승부의 금과옥조(金科玉條)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식이 아닌 실천이다. 크고 작은 우리네 세상살이에서도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버린다'는 행위는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 이 바둑은 `어느 시기에, 어떻게 버려야 하는가'를 보여주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음미할만한 가치가 있다.
바둑잠언록이라고 할 수 있는 `위기십결(圍棋十訣)'의 첫머리에 올라 있는 말도 다름 아닌 `탐승부득(貪勝不得)'. 억지로 승리를 탐하면 얻을 수 없으니 순리대로 두라는 뜻이다.
그리고 보면 백(전보 백 96)로 끊어간 것은 단호한 결전의 의지가 아니라, 무거운 중앙 백대마를 `기꺼이 버리겠다'는 의사표시였던 것 같다.
되새김질을 하듯 다시 한번 음미해보자. 백 106이면 흑 107은 필연인데 신기한 일이다.
60집을 호가하는 대마를 버린 백은 다이어트에 성공한 미인(?)처럼 상쾌한 표정이고 급작스런 과식으로 비대해진 혹은 불쾌하리만큼 움직임이 둔해지고 있지 않은가.
백 108 역시 기분 좋은 선수. 손빼면 백 1로 간단하게 수가 난다. 어쩔 수 없이 흑 109로 잡아둘 때 좌중앙 백 110에 붙여둔 수가 기민했다. 백에 대한 일종의 상해보험.
6분 뒤 드디어 좌하귀에 첫눈이 내린다. `승리'를 확신하는 서설(瑞雪)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