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카스배 천원전] ○김승준 4단 ●강 훈 8단

기사입력 1996년 06월 14일 15시 50분


제8보 (58~76)=한순간의 방심으로 좌하일대의 흑진이 뒤엉켜버린다. 백 58에 고분고분 이어주자니 순식간에 당해버렸다는 마음의 상처가, 그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하릴없이 흑 59, 61, 63까지 선수처리하고 흑 65. 하긴, 이렇게라도 정비하고 공격자세를 취해두지 않으면 도리어 이리저리 쫓기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기막힌 노릇 아닌가. 백이 좌상쪽 흑의 텃밭을 망쳐놓고 중앙으로 유유히 흘러나오는 동안 볼모로 잡혀 있던 좌하귀 한점을 생환해오면서 백진을 조금 깎아냈을 뿐, 도무지 흑은 한 일이 없다. 이게 모두 흑(전보 흑 51)탓이다. 이제는 중앙마저 백의 영역으로 바뀔 조짐을 보인다. 백 66, 70, 72. 선수로 두텁게 바리케이드를 쳐두고 백 74로 날렵하게 가로지르니 우상쪽 백이 반짝, 눈을 빛내며 호응한다. 게다가 백 74는 `선수성'이다. 흑 75로 뛰어두지 않으면 좌하일대에서 뒤엉켜 무리를 이룬 흑 일단의 앞길이 고단해진다. 백의 걸음은 자신에 차 있다. 백 76으로 발빠바르게 상변 흑의 정수리를 눌러간다. 이대로 바라만 보다가는 중앙에 대규모의 `화이트단지'가 조성될 것 같은데. 흑의 마음은 바쁘기만 하다. 우하변도 백 `가'등의 침입이 남아 아직 내집임을 자처할 수 없는 처지이고 상변에도 백 `나'가 한눈에 보인다. 또 지금은 마음 편하게 집이나 지키고 있을 상황도 아니다. 자, 흑의 다음 한수는? 요즘 홍익동 한국기원에는 부챗바람이 한창이다. 에어컨이 가동되기는 하지만 어디 부챗바람처럼 맛깔스런 시원함이 있나. 한판의 승부에 몰두하다가 척, 펼쳐 살랑살랑 흔들면 불어오는 바람. 가슴 후련한 신바람, 강바람이 따로 없다. 한국기원에서는 1인자 이창호 7단의 휘호가 적힌 합죽선을 제작, 판매할 예정이라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일본기사들의 휘호가 적힌 쥘부채는 일본여인의 기모노처럼 타이트해 왠지 답답하지만 합죽선은 우리 전통의상처럼 넉넉한 여유가 있다. 게다가 세계 최고기사 이창호의 휘호라니. 한국기원의 의욕적인 이번 기획이 합죽선의 바람처럼 풍성한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 해설.김재구 8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