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유치비화] (10) 집행위원의 마음 읽기
기사입력 1996년 06월 12일 14시 58분
##집행위원 윌씨의‘표심(票心)’미스터리 한-일간의 월드컵 유치경쟁에서 가장 핵심적인 작업은 아마도 () 집행위원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었을 것이다.
한표에 당락(當落)이 걸려 있기 때문에 이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한-일 관계자들은 희비를 거듭했고 그 `행간'을 읽는데 머리를 싸매야 했다.
지난 3월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96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이 벌어질 당시의 비화 한토막.
한국-일본의 최종예선 결승전이 벌어지기 전날인 27일 저녁 콸라룸푸르 시내 한국대사관에서 만찬이 열렸다.
주 말레이시아 한국대사관측이 월드컵 유치홍보차 현지에 가있던 조상호 전 체육부장관과 박경진 유치위 홍보실장, 강성일 보도부장 등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특별손님으로 스코틀랜드의 데이비드 윌 집행위원 부부가 초대됐다.
데이비드 윌씨는 유럽 집행위원 가운데서도 유달리 중립을 강조했던 인물.
그는 조 전장관이 "한국이 월드컵을 유치하는데 도와달라"고 말하자 곤혹스런 표정으로 "어제 일본대사관 만찬서도 똑같은 요청을 받았다"며 "솔직히 선뜻 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윌씨는 이어 "차라리 눈 딱감고 내일 (최종예선) 결승전서 이기는 팀에 투표를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농담삼아 던졌다.
한국관계자들도 그를 더 이상 곤란하게 만들 수가 없었다.
27일 결승전이 벌어진 샤 알람 경기장.
한국의 승리가 확정된 순간 본부석 맨 앞줄에 부인과 함께 앉아있던 윌씨가 벌떡 일어나 뒷자리의 조상호 전 장관에게 다가오더니 조씨의 손을 두손으로 덥썩 잡았다.
"미스터 조, 정말 축하합니다."
옆에는 일본축구협회 나가누마 회장이 있었지만 윌씨는 조 전 장관의 손을 꽉 부여잡은 채 몇번이고 흔들어댔다.
둘의 다정한 모습은 퇴장하는 순간까지 계속 이어졌다.
윌씨의 이같은 반응에 대해 한국 유치위원회는 그 의미 파악에 한참 골몰했다.
과연 만찬장에서 농담삼아 한 얘기처럼 우승을 차지한 한국에 표를 주기로 결심했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단순한 축하인사인지...
분위기로 보아선 한국쪽에 호의적인 것 같은데 그렇다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후 유치위의 성향분석 리스트에는 스코틀랜드가 한국지지로 분류됐지만 과연 그가 표대결에서 한국을 찍었을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