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동풍(東風)은 용(龍)을 부르는가(28)
기사입력 1996년 06월 07일 16시 46분
`무현왕자가 당했다!'
이소야가 자신의 방심을 탓하며 무현이 있던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는 지금 사방에서 날아온 올가미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무현을 포박하고 있는 사람들은 전원 여자들이었다. 그녀들은 무현을 위협하고 있었다. "이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으면 칼을 버려."
이소야는 망설이지 않는다. 마치 생각이 없는 사람과도 같다. 여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칼은 수중에서 벗어나 있다. 보고 있던 인들조차 의아할 정도다.
그의 칼이 바닥에 떨어지자 인들이 달려들어 이소야의 혈도를 짚고는 무현과 함께 부락안으로 끌고갔다. 이미 마을은 외부인의 침입으로 인하여 대낮 같이 횃불을 밝히고 있었다. 촌장쯤으로 보이는 노인이 걸어 나왔다. "너희들은 첩자냐?"
이소야는 단지 한 마디만 꺼낸다.
"잘못 보았소."
촌장이 다시 물었다.
"아니라는 증거가 있는가?"
이번에는 무현이 위엄있게 말한다.
"첩자라는 증거는 또 어디 있소?"
촌장은 형형한 안광을 뿜어내며 그들의 아래 위를 훑어보았다. 얼마나 예리한지 칼끝이 스치는 기분이었다. 전사의 수장이 아뢰었다.
"보통 고수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들 6명을 단신으로 상대 했습니다. 만일 다른 한 명을 제압하지 못했다면 우린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촌장은 보고를 듣자 매우 놀라는 신색이었다.
"그대의 이름은?"
"이소야라 불러주시오."
"어느 문파 출신인가?"
"중원이 아니오."
촌장의 눈매가 가느스름해 졌다.
"살아남기 어렵겠군."
이소야는 전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듯 하다.
"나는 상관 없지만 그는 안되오."
촌장을 비롯한 인들이 매우 흥미롭다는 듯 그들을 번갈아 살펴보았다. 촌장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상관있는 작자부터 해치워야겠군."
일말의 긴장이 이소야의 미간을 스쳐간다. 무현 역시도 표정이 굳어지고 있었다.
이때 전사의 수장이었던 자가 앞으로 나섰다.
"이 작자의 몸을 수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신분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를테니까요." 촌장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는 이소야의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문득 그의 손 끝에 조그마한 영패 하나가 딸려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