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항공사 승무원이 만난 별난 배낭족
기사입력 1996년 06월 03일 15시 46분
**노숙중 추근대는 외국남자에
**'Yes'만 연발하다 큰일날뻔
얼마전 유럽노선 근무를 갔을 때였다. 새벽 2시쯤. 브뤼셀 힐튼호텔에서 잠을 뒤척이고 있는데, 프런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한국인 여자 한사람이 와서 다짜고짜로 여승무원을 연결해 달라며 떼를 쓴다는 거였다.
그 여자는 3일뒤쯤 편으로 서울로 돌아갈 예정인 배낭여행자 K인데 다급한 사정이 생겨 `SOS'를 쳤다는 것이다.
호텔 로비로 내려가봤더니 얼굴이 햇빛에 몹시 그을은 K는 대뜸 여승무원들 방의 소파라도 좋으니 잠좀 재워달라고 졸라댔다.
그녀는 배낭여행을 돈안쓰는 기록세우는 무전여행으로 착각했던지 사흘을 멀다않고 노숙을 했다고 한다. 취리히발 로마행 야간열차, 에펠탑광장, 로마 트레비 분수옆, 한국식당 골방… 그녀는 마치 노숙하기 위해 유럽에 온 것처럼 밤마다 배낭을 베개삼아 별보기 운동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머무는 힐튼호텔을 찾아왔던 날 밤도 그녀는 브뤼셀역 광장을 `공짜 임대'해 침낭을 깔고 날밤을 새우고 있었다.
그때 AC의 축구선수 바조처럼 말총머리를 한 정열적인 남자가 어, 영어, 불어가 범벅이 된 `국제어'를 써가며 말을 붙여왔다.
`2002 월드컵을 한국에서 유치하기 바란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우리의 소프라노 수미 조를 아느냐'로 말문을 튼 두사람은 이내 친숙해져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특히 혼자 밤을 지새야 하는 K로선 말총머리를 만났다는 게 미팅에서 `킹카'가 걸린 셈이라면서 좋아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일은 엉뚱한 방향으로 발전해갔다. 말총머리는 그녀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서면서 더욱 알쏭달쏭한 영 불 말로 추근대왔는데, K는 딱잘라 거절 못하는 성격이 화근이었다.
"날씨가 쌀쌀하니 팡세오네(싼 숙소)로 옮길까?" "음…예스."
"내 친구도 있는데 괜찮겠니?" "…예스."
K는 말뜻도 잘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말총머리의 부드러운 미소만 보고 `예스'를 연발했다.
결국 `브뤼셀의 예스마담' K는 분위기 탓인지 마음씨가 인터내셔널하게 착해서 그런지, 말총머리가 머무는 호텔로 따라갔다가 두남자에게 겁탈당하기 일보직전에야 비로소 "노(NO)!!"라고 소리지르며 허둥지둥 빠져나왔다는 어설픈 이야기.
여성 배낭족 여러분. 제아무리 `신사'가 접근해오더라도 `예스'와 `노'를 분명히 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