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동풍(東風)은 용(龍)을 부르는가(11)
기사입력 1996년 05월 20일 14시 28분
**그녀는 만취된 사원의 목을 … "아함." 아귀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눈을 떴다.
방안은 엉망이었다.
기녀는 보이지 않았고 사원은 만취되어 곯아 떨어져 있었다. 아귀는 사원을 흔들어 깨웠지만 일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밥 좀 먹자."
뱃속에서는 아우성이었다. 그러고보니 끼니를 찾아 먹지 못한 날이 제법 된다.
아귀는 사원을 발로 툭툭 건드려 봤다. 여전히 인사불성이었다.
"쯧쯧. 명색이 고수라는 사람이..."
아귀는 기방을 나와서 객점으로 연결된 통로를 어슬렁 걸었다. 아침을 먹고 떠나야겠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즐거운 눈요기가 벌어질 것 같지가 않다.'
아귀는 사실 간 밤에 사원과 기녀가 벌인 정사(情事)를 기대하면서 문밖에 쭈그리고 앉아서 기다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 특별난 취미는 돌발적인 사원의 태도로 말미암아 재미를 만끽하지 못하고 말았다.
이때 멀리 객점의 입구에 한 여인이 들어서는 게 보였다.
다소 떨어진 거리 였지만 그녀의 미모는 특출난 것이었다. 객점내에서 식사를 하던 중인들의 시선이 모조리 집중되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아귀는 생각한다.
`저런 여자가 옷을 훌러덩 벗어 던지고 사내를 껴안고 있는 광경을 보게되면 난 얼마나 행복할까?'
전혀 엉뚱한 상상을 하며 객점의 문턱을 넘던 아귀가 홀연 굳어진다.
`가만...저 요물이 누구야?'
절색의 미태를 자랑하며 나타난 여인을 늦게나마 알아본 것이다.
예의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쓸어보는 여인은 바로 일심부의 모용추가 아닌가.
아귀는 눈썹이 휘날리도록 몸을 숨겼다.
지난번 그녀에게 사정없이 얻어맞은 뺨이 아직도 욱씬거리는 기분이었다. 아귀는 이빨이 으스러져라 갈았다.
`언제고 네 년을 가만 두진 않을거다. 그 후에는 내 부친에게 행했던 것처럼 두 눈알을 뽑고 혀를 잘라내어 부친의 제삿상에 올릴 것이다.'
복수를 다짐하는 아귀의 눈빛은 새파랗게 빛난다.
모용추는 아귀의 원한 따위는 전혀 짐작하지도 않고 기방쪽으로 사뿐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녀는 잠들어 있는 사원의 방으로 서슴없이 들어섰다. 사원은 여전히 제정신이 아니다. 빈 술병은 제 멋대로 방안을 굴러 다니고 있다.
모용추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명색이 대황제일의 고수라는 사람이 이게 무슨 꼴인가?"
그러나 만취되어 잠들어 있는 사원이 대답할리 만무다. 모용추의 눈가에 순간적으로 살기가 떠올랐다.
그녀는 번개처럼 검지를 곧추 세우며 만취되어 있는 사원의 목 천돌혈을 노리고 찔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