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동풍(東風)은 용(龍)을 부르는가⑥
기사입력 1996년 05월 14일 15시 27분
10여명의 인형이 기척도 없이 낙양표국의 뜰로 내려서고 있었다. 일심부주와 그 일행이었다.
모용추는 청죽생이 머물고 있는 방안을 힐끔 살펴보며 나직한 어조를 꺼냈다.
"사형의 등장을 예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총관은 마중을 나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군요." 일심부주 묵양대인은 개의치 않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간혹 날 무시하기도 하지만 정작 중대한 일에는 무시하는 법이 없으니 상관없네. 사매는 상관말게." 모용추가 반박하려는 순간에 문이 열리며 청죽생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용낭자는 소생을 그만 꾸짖어 주시오. 잠시 운공(運功)을 행하느라 영접이 늦었습니다." 일심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매의 성격이 다소 급하니 자네가 이해하게."
모용추는 순순히 넘어갈 기세가 아니었다.
"우리가 황보백령을 잡아들이기 위해 떠났음을 그는 잘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돌아올 시간도 계산하고 있었을 터인데 어째서 그때 방안에서 운기행공이나 하고 있었단 말인가요?" 청죽생은 빙그레 웃었다.
"솔직히 말씀 드린다면 이토록 빨리 해결하고 돌아오실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모용추가 코방귀를 날렸다.
"우리가 황보백령을 상대로 쩔쩔 맬 것이라고 판단했단 말인가요?"
청죽생은 여전히 담담했다.
"황금사원은 내력이 있는 문파이고 황보백령은 쉬운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혈마사가 그녀를 돕고 있지 않습니까?" 모용추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총관의 판단은 빗나갔어요. 우린 그녀를 쉽게 제압했지요."
묵양대인이 거들었다.
"황보백령은 매우 지쳐 있었소. 그녀는 사매의 탈혼침(脫魂針)에 의해서 단숨에 거꾸러지고 말았소." 총관이 몹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귀문(鬼門)의 생사탈혼침(生死脫魂針)을 사용했단 말인가요?"
묵양대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왜 아니겠는가?"
청죽생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모용추는 대관절 일신에 어떠한 절기를 감추고 있는 것인가? 그녀는 늘 신비함으로 가득차 있다. 다가가면 갈수록 더욱 깊이를 측정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언제나 가장 두려운 여인이다.
모용추가 손짓을 하자 인검수 한 명이 축 늘어진 황보백령을 안고 다가왔다.
"황보백령이오. 그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총관은 알겠소?"
청죽생은 자세히 황보백령을 들여다봤다. 그녀의 미간에는 까맣게 윤기가 흐르는 침이 깊숙하게 박혀 있었다. `이것이 탈혼침이다!'
청죽생은 침을 꿀꺽 삼키며 황보백령의 맥을 짚어 보았다.
"그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