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이규승 '어린이날 문닫는 경륜 속사정'
기사입력 1996년 05월 01일 15시 21분
경륜과 경마가 어린이날인 5일 휴장을 선언했다.
입장객들이 5월 첫 휴일을 맞은 나들이객들의 행락길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는게 그 이유다.
그러나 실제 이유를 좀더 들어보면 경마는 자발적으로 쉬는 반면 경륜은 상부의 지시로 `휴장을 당했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경륜장과 경마장은 주말만 되면 어린이를 데리고 놀러온 가족들로 붐빈다. 자전거나 말들이 시원스레 달리는 모습은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끌기에 충분하다. 경륜장과 경마장에서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빌려주는 자전거 수백대가 삽시간에 동이 날 정도다.
그런데도 경마가 쉬는 것은 경마장 주변의 교통대란을 우려한 때문이다.
10만에 육박하는 경마장 입장객이 주변 서울대공원과 서울랜드로 몰려든 인파와 뒤섞여 심각한 교통혼잡이 벌어질게 뻔하다.
이 때문에 마사회측은 이 참에 하루 쉬어 나들이객들의 행락길을 돕자는 대의적 견지에서 휴장을 결정했다.
경륜사업본부는 작년 여름 경마휴장기에 재미를 톡톡히 본 경험이 있는터라 즉시 어린이날 대축제를 여는 방안을 마련, 언론에 발표했다.
고적대와 경찰악대 공연, 자전거 묘기쇼 등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어린이 입장객에게는 헬륨풍선 등 선물도 주기로 했던 것.
그런데 다음날 경륜사업본부는 찬물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상부로부터 `무조건 휴장 지시'가 떨어진 것이다. "5일엔 올림픽공원 입장객이 19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니 경륜을 쉬라"는게 지시의 내용이다.
그러나 경륜장의 하루 최고 입장기록은 1만4천명이다. 올림픽공원 전체 입장객에 비해 소수에 불과할 뿐더러 도로로 둘러싸인 42만평이나 되는 올림픽공원을 혼잡하게 만드는 주요원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런 문제를 따지기에 앞서 경륜이 왜 존재하는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내기를 하고 싶은 심리가 있다. 소위 도박심리를 갖고 있는 것이다. 승부를 겨루는 바둑이나 당구 등에서 내기를 거는 것도 도박심리에서 비롯된다.
도박심리는 음성도박으로 발전돼 범죄를 야기시키기도 한다. 이런 도박심리를 건전한 레저로 잠재우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경륜이고 경마다.
경륜은 선수에게 푼돈을 걸고 신나게 응원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때로는 두둑한 배당금을 타는 뜻밖의 행운도 누리는 매력을 지녔다.
이 때문에 애 어른 가리지 않고 좋아해 올들어 입장객과 매출액이 급증, 흑자원년을 맞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런 경륜이 황금휴일에 영업을 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상승세의 리듬을 잃는 것은 물론 경륜팬들은 모처럼의 공휴일을 무료하게 보내야 할 판이다.
이보다도 신문보도를 믿고 어린이날 경륜축제도 보고 선물도 받겠다며 부모의 손을 잡고 경륜장을 찾았다 헛걸음할 고사리손들은 무엇으로 어떻게 보상해줄 것인가.
경륜사업본부는 속이 쓰리지만 `상부'의 눈총이 두려워 `재하자 (在下者) 유구무언'일 뿐이다. 경륜사업본부의 `상부'는 이제 예전과 달라져야 한다. 문민시대에 걸맞은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