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운명의 장(章) (31)
기사입력 1996년 04월 23일 15시 36분
아귀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 하고 있었다. 그는 중상을 입고 있는 목엽이 무림의 고수인 석부용을 당해내지 못할 것이리란 사실을 너무도 명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이미 짐작하고 있다니까 말하겠소. 그는 분명 대황제일검이오. 내가 지니고 있던 해동검결은 이미 그의 수중으로 넘어갔소. 당신의 동생이라는 그녀는 감히 무모하게 그를 상대하려다가 일격에 죽었지요. 그리고 그 해동검결이라는건 무림인들이 생명을 걸 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알았소. 내가 당신이라면 결코 무모한 짓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오." 포기하라는 뜻이었다.
석부용이 잠시 혼란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아라가 슬쩍 물었다. "해동검결이라니오? 그게 뭐요?"
목엽은 그녀의 질문에 다소 당혹감이 일었지만 차분하게 설명한다.
"잘못 알려진거요. 그건 검결이 아니라 동방왕가의 왕도(王道)를 수록한 학문이오. 무림인들에게는 불필요한 것이오요." 아라가 호기심이 일어나는 듯 재차 물었다.
"동방왕가라면 지금 심양에 볼모로 잡혀있는 왕자궁의 무현공자를 말함이오?"
그녀의 관심은 단순한 것으로 보여지지 않았지만 목엽은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소."
"해동검결을 왕자궁에 전달한다는 것이오?"
"본래 주인을 찾아가는 것 뿐이오."
목엽의 담담한 대꾸에 아라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매우 착잡한 표정을 짓는 그녀. 석부용의 차가운 음성이 분위기를 일신시켰다.
"그것의 용도를 어떻게 믿을 수 있나요?"
목엽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그건 자유요. 그러나 분명히 말해 두지만 무림인들에게는 불필요한 물건이오." 석부용은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린 듯 싸늘한 태도로 일관했다.
"하지만 우린 포기할 수 없어요. 사문의 명령을 거역하기란 매우 어렵지요. 빈 손으로 돌아간다면 비참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그녀는 모용추의 시퍼런 서슬을 떠올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귀는 사태가 비관적으로 흐르자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동방산장의 이소야를 상대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노릇이오. 젊은 나이에 더 이상 재미도 보지 못하고 죽는 게 억울하지도 않소? 무적도와 다시 해후해서 뜨거운 밤을 보내야 하지 않겠소?" 무적도 사원과의 관계를 들먹이자 석부용은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 사람은 본래 이소야를 찾기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데 지금 어디에 있느냐?"
석부용의 예기치 않았던 질문에 아귀는 변명이 궁색해졌다.
"그...는... 나도 모르오."
염정선라 석부용은 과연 눈치가 빠르다.
"사원은 그와 대결을 벌였지?"
장내는 다시 한 번 무거운 정적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