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김치 사가는 일본남자배구선수들
기사입력 1996년 04월 19일 15시 22분
지난 15일 오전 9시 김포공항 국제선 제2청사.
장승처럼 커다란 체격의 사나이 10여명이 큼직막한 손에 똑같은 모양의 상자를 하나씩 들고 청사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 대한항공 행 출국대 앞에 일렬로 줄을 선 이들은 다른 짐보다는 유난히 이 상자에 신경을 쓰며 화물표를 붙이고 있었다. 출국대의 대한항공 직원이 "아노 하코와 난데스카(그 상자는 뭡니까)"라고 묻자 일제히 "기무치(김치)"라고 대답하며 아주 조심스럽게 화물칸으로 가는 컨베이어벨트에 상자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나서 밝은 표정으로 잡담을 나누며 출국 수속을 밟는 이들은 바로 하루전 한국대표팀을 3대0으로 완패시킨 남자배구팀 선수들이었다. 나카가이치를 비롯, 오다케 이즈미카와 미나미 등 남자배구팀의 주축 선수들은 열렬한 김치광들. 96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1차풀리그(12~14일)를 치르기 위해 지난 10일 서울에 도착, 올림픽파크텔에 캠프를 정했던 이들은 호텔측에 "점심과 저녁 때는 꼭 한국식 김치를 먹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고 김치로 컨디션을 조절하며 한국전을 대비했다. 특히 달고 싱거운 식 김치보다는 젓갈과 고춧가루가 듬뿍 들어간 순 한국식 김치만을 선호해 호텔 2층의 뷔페식당에서는 거한들의 왕성한 김치 식욕을 만족시키느라 평소보다 몇포기의 김치를 더 공급해야 했다고. 김치 덕택인지 은 14일 벌어진 한국전서 3세트를 통틀어 단 17점만을 내주며 3대0으로 완승을 거둬 58년 처음으로 한-일전이 벌어진 후 가장 큰 스코어차로 승리했다. 3일동안 한국에서 먹었던 김치로는 절대 양이 부족했던지 선수들은 한국을 떠나는 날에도 김포공항에서 1포기에 1만5천원 하는 김치를 너도 나도 두세 상자씩 사느라 정신이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