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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최고 체감 온도 35도 안팎을 보이던 지난 한 주 동안지프 랭글러 사하라 파워탑을 시승했다. 지프 랭글러만이 줄 수 있는 오프로드 감성과 투박한 매력에 흠뻑 빠져있는 와중, 뜨거운 더위에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옵션이 있었다. 바로 '파워탑'이다.
지프는 어벤저, 레니게이드, 컴패스, 왜고니어, 그랜드 체로키, 랭글러 등 다양한 SUV 라인업을 갖췄다. 다만, 차량의 루프에 대한 선택권은 오직랭글러에만 제공된다. 지프 랭글러의 루프는 하드탑, 소프트탑 그리고파워탑까지 총 3종이다. 소프트탑은 외관상 차이가 확연하다. 일반적인 루프 대신 호루가 씌워져 있다.
멀찍이서 바라봤을 때, 하드탑과 파워탑 모델을 구분하긴 어렵다. 실제로 차량에탑승하거나위에서 바라봐야만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지프 랭글러는 도어부터 루프까지 주요 외장 부품을 배선과 볼트를 몇 개 푸는 것만으로 모두 제거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사고 수리 및 부품 교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다.
하드탑도 마찬가지다. 1열 루프는 잠금장치 몇 개만 풀면 떼어낼 수 있으며, 2열에서 트렁크부까지 이어지는 하드탑도 볼트 몇 개만 풀면 떼어낼 수 있다.대신 일부 불편한 노동은 감수해야 한다. 2열부터 트렁크를 덮고 있는 루프는 성인 3명 이상이 힘을 합쳐 들어야 한다.
장착 및 제거 과정에서 발생할수 있는 손상뿐 아니라 주차장에 루프를 보관할 공간이 마련됐는지다양한 상황도고려해야 한다. 비교적 복잡한 주차 환경을 갖춘 국내 실정상 지프 랭글러구매 후 하드탑을 떼어냈다가 다시 붙이는 일은 손에 꼽을 것으로 보인다.
파워탑은 이런 하드탑의 불편을 보완한 매력적인 옵션이다. 위에서 바라보면 캔버스 소재의 천이루프를 덮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파워탑은 버튼만 누르면 전동으로 1열부터 2열까지 루프를여닫을 수 있다. 가격은 파워탑이 350만원 비싸다.
불볕 더위라에어컨만 쌩쌩 틀어놓을 뿐파워탑은 채 10분도 열어두지 못했다. '날씨가 조금만 시원했더라면 파워탑이 주는 개방감을 느낄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시승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시승 마지막 날 밤, 카메라와 삼각대 그리고 지프 랭글러의 차키만 들고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포천 비둘기낭폭포다.
정통 오프로더지프 랭글러는 운전자에게 어떤 험로라도 막힘없이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을 심어준다. 쉽게 말해 모험심을 자극한다. 한밤중 깜깜한 도로 위를 홀로 주파할 때도 쉽게 겁이 나지 않는다. 한참을 달려 포천비둘기낭폭포 캠핑장 주차장에 도착했다. 구름이 없을 거라는 예보를 믿고 여기까지 달려왔다.
시동과헤드램프를 비롯한 조명류를 전부 끄고, 디지털 계기판, 센터 디스플레이의 밝기까지 최대로 낮춘다. 이제 파워탑을 열 차례다. 기대감을 품고 파워탑 개폐 버튼을 눌렀다. 아뿔싸, 하늘에 핑크빛 구름이 짙다. 별빛은구름 사이로 희미하게존재감을드러낼 뿐이다.
한참을 달려왔는데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2열 시트를 접고 바닥에 몸을 눕힌 채 잠복 태세에 돌입한다. 지프 랭글러의 차박 활용도를 체험해 보는 셈이다. 안락함을 위해 트렁크까지 완전히 닫았다.
아쉽게도 트렁크를 완전히 닫으면 다리를 살짝 구부려야 한다. 차에서 수면까지 해결하려면 차박을 위한 별도의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이와 더불어 한 시간 동안 달궈진 배기 파이프의 열기가 등허리로 전해진다. 한 시간 동안 구름이 걷히길 기다렸다. 귓가엔 귀뚜라미와 개구리가 우는 소리만맴돈다.
구름이 걷힐 때까지 멍하니 하늘만 바라봤다. 시끄러운 도심에서 벗어나 조용한 시골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누워 하늘만 바라보는 것만으로 힐링이다. 한 시간쯤 지나자 하늘에 구름이 개며 은하수를 허락하기 시작했다.지프 랭글러 사하라 파워탑이진가를발휘할 시간이다.
파워탑이 주는 개방감은 압도적이다. 넓은 면적 개방되는 파노라마 선루프와 비교할 수 없다. 파노라마 선루프를탑재한 일반적인 SUV라도 2열로 보이는 은하수는 유리를 한 겹 통과해야우리의 눈에 도달할 수 있다. 유리 한 겹이 낀 것뿐이지만 느껴지는 개방감은 천지 차이다.
파워탑은 컨버터블 스포츠카 수준의 개방감을 보여준다. 컨버터블 스포츠카와 차이는 탑을 벗겼을 때 주변의 시선이다. 컨버터블 스포츠카는 요란하게 자신의 멋스러 외관을 과시하며 탑을 벗긴다. 언제 어디서 벗겨도 주변의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 지프파워탑은오롯이 탑승객에게만 개방을 알린다.
분명 파워탑은 두 얼굴을 하고 있다. 터널에 들어갔을 때, 실내로 유입되는 소음은 동승자에게 멋쩍은 미소를 보이게 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터널을 빠져나와 파워탑을 열면 동승자는 파워탑이 제공하는 시원한 개방감에환한 미소를 보인다.
입추가 지났는데도 더위가 한창이다. 최장수 열대야 기록을 이어간다. 지프 랭글러 사하라 파워탑은 곧 다가올 가을밤에 가장 매력적일 것이다. 시원한 가을바람 속에 파워탑을 열고 얼굴에 바람을 맞고 달리는 치명적인 유혹을 어떻게 헤어날 것인가. 랭글러가 주는 치명적 유혹이다.
포천=서동민 에디터 dm.seo@cargu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