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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는 전사한 전우들이 진짜 영웅…그들 기리려 한국 오곤 해"
호주 시드니에서 만난 한국전쟁 참전용사 어니스트 로버트 홀든(91) 씨는 전쟁터에서 다친 팔과 다리를 주무르며 이렇게 말했다.
90세가 넘은 그는 팔과 다리가 조금씩 불편했지만, 70년 전 이야기를 하면서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당시 날짜와 동료의 이름 등을 정확히 기억했다.
그는 1932년 6월 호주 시드니 교외 패딩턴에서 태어났다. 스무살이던 1952년 우연히 현지 일간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 올라온 광고를 보고 한국전에 참전하기로 결심했다.
홀든 씨는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몰라서 나중에 지도를 보고 나서야 알게 됐다"며 "그전에는 군대에 갈 생각이 없었지만, 모병 광고를 보고 '재미있겠다'고 생각해 입대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입대해 호주에서 훈련받은 뒤 1953년 5월 호주 왕립연대 제2대대 소속 보병으로 부산에 도착했다.
홀든 씨는 "자연이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당시 부산에서 본 사람들은 너무나 가난했다"며 "골판지 상자로 집을 지었고 아이들은 군 트럭만 보면 몰려와 손을 내밀었다"고 회상했다.
바로 최전방인 355고지에 배치됐다. 지금의 경기도 연천군 고왕산 자락 계곡 일대가 그의 전장이었다.
그는 밤마다 중공군이 향수병을 유발하기 위해 확성기로 트는 '하버 라이트'(Harbor Lights) 같은 당시 유행가를 들으며 10명 정도의 분대원과 순찰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의 군 생활은 그리 길지 못 했다. 최전방에 배치된 지 한 달도 안 돼 전장에서 중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1953년 5월 28일 홀든 씨는 전우인 잭 애시 상병이 실종되자 분대원들과 그를 찾기 위한 수색 작업에 나섰다. 그러던 중 운이 나쁘게 지뢰밭에 들어갔다.
7번째 지뢰까지는 무사하게 통과했지만, 한 분대원이 8번째 지뢰를 건드렸고 지뢰가 터졌다. 그의 몸 수십군데에 지뢰 파편이 박혔다.
지뢰가 터졌을 때 죽을 수도 있었는데 겁이 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홀든 씨는 "사실 그 순간에는 무섭기보단 좀 기분이 좋았다. 지뢰가 터지고 쓰러져 피를 많이 흘리자 옆에 있던 동료가 나에게 모르핀 주사를 2번이나 놔서 금방 아픈 것도 사라지고 상당히 기분이 좋아졌다"고 기억을 되살렸다.
엄청난 출혈과 마약성 초강력 진통제의 약 기운에 아득히 멀어져가는 의식을 붙잡으려 애썼던 그는 "헬리콥터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됐는데 모르핀이 몸에 퍼지는 상황에서 처음 헬기를 타보니 오히려 조금 신이 났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가 죽지 않고 살았다는 것은 기적이었다. 지뢰가 터지면서 그가 지니고 있던 수류탄이 지뢰 파편에 맞았는데도 폭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상적이라면 수류탄이 터졌어야 하지만, 수류탄이 쪼개지면서 노란색 화약 가루들만 떨어지고 폭발하지 않아 살 수 있었다.
홀든 씨는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며 연신 "운이 좋았다(lucky)"라고 말했다.
그는 이 사건으로 전신 148바늘을 꿰맸고 한동안 목발을 짚어야 했다. 또 다리에 있는 피부가 심하게 손상돼 피부 이식까지 받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정말 많이 아팠다"며 "피부가 어느 정도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10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크게 다친 홀든 씨는 일본을 거쳐 호주로 돌아왔고 1953년 7월 27일 시드니에 있는 콩코드 병원 병실에서 뉴스를 통해 정전 소식을 접했다. 하지만 그는 전쟁이 끝나고도 2개월 넘게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홀든 씨는 전쟁 이후 지금까지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우리 정부의 초대로 참전용사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지만, 그보단 한국에서 숨진 전우들을 기리기 위해 개인적으로 찾은 적이 더 많다.
그는 "70년 전 처음 부산에 갔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지금은 높은 건물이 즐비하고 활주로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길고 넓은 도로들이 있는 곳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또 "복무했던 휴전선 인근이나 판문점을 찾는 것도 좋아한다"며 "그곳은 북으로 막혀 있는 곳이지만 북한 사람들이 수십 년 동안 한국으로 탈출하려고 시도하는 곳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한국전에 참전한 것이 무척 자랑스럽고 지금껏 살아 있다는 것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며 "다만 나는 영웅은 아니다. 그곳에서 숨진 내 동료들이 영웅이다. 내가 구하려 했던 애시 상병은 아직도 실종된 상태다"라고 회한을 드러냈다.
laecorp@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