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산업의 '흥국생명 지원 논란'이 재계의 '뜨거운 감자'다.
이같은 논란은 지난달 흥국생명의 콜옵션 행사 연기 및 번복 사태로 촉발된 것이다.
흥국생명은 2017년 발행한 5억달러(당시 약 5600억원) 규모 외화 신종자본증권의 조기상환(콜옵션) 기일 도래를 앞두고 지난달 초 콜옵션 행사 시일을 연기했다가, 사실상 채무불이행으로 간주되는 등 금융시장 내 후폭풍이 거세자 다시 콜옵션을 행사하기로 번복한 바 있다. 결국 흥국생명은 시중은행들을 상대로 4000억원 규모의 환매조건부채권(RP)을 발행하고 나머지는 자체 자금을 활용해 급한 불을 껐다. 그러나 RP 상환 부담으로 인한 유동성 위기는 여전한 셈이다.
그러나 태광그룹이 이사회를 열어 흥국생명에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약 4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안건을 의결할 예정이라고 알려지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이와 관련 태광산업은 지난 9일 공시를 통해 "흥국생명 유상증자 참여를 검토 중이지만 아직 확정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시 이후 시민단체는 물론 소액주주들의 반발은 더 거세졌다. 기업가치 및 주주가치 훼손이 그 이유다. 특히 대주주의 손해를 소액주주들이 떠안는 셈이 된다는 점이 강조됐다.
가장 적극적인 반대 의사를 밝힌 곳은 태광산업 지분 5.8%를 보유한 트러스톤자산운용이다.
트러스톤은 지난 9일 태광산업의 공시 직후 입장문을 통해 유상증자 참여 반대를 표명했다. 트러스톤은 "흥국생명 대주주인 이호진 회장을 위해 태광산업과 태광산업 주주의 희생을 강요하는 결정으로, 성과는 대주주가 독식하면서 위기 상황만 소액주주들과 공유하겠다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13일에는 이사진에 공정한 결정을 촉구하는 내용증명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또한 유상증자 참여 승인을 대비해 이사회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무효 확인 등 법적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압박했다. 내용증명에서 트러스톤은 태광산업의 유상증자 참여가 상법상 금지된 신용공여 행위에 해당한다고 명시했다. 상장사가 지분 10% 이상을 소유한 주요 주주와 특수관계인에게 자금 지원 성격의 증권 매입을 금지하고 있는 상법에 저촉된다는 것이다. 또한 유상증자 참여가 공정거래법상 계열회사 부당지원 행위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긴급한 자금조달이 필요한 흥국생명 내부 상황과 높은 시장금리를 고려할 때 신주 발행이 시장가격보다 상당히 낮은 금액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제3자의 인수 가능성은 작다는 점에서다.
경제시민단체들 잇단 비판…태광산업 "전환우선주 인수 안해"
시민단체들의 비판도 거셌다.
경제개혁연대는 10일 논평을 내고 "주주도 아닌 태광산업의 흥국생명 유상증자 참여에 대해 강력히 비판한다"면서 "이호진 전 회장이 자신의 책임을 다른 계열사에 전가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도 11일 성명서에서 "이 전 회장이 본인이 책임질 수 있는 어려운 선택지 대신, 태광산업에게 그 책임을 떠 넘기는 가장 손쉬운 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며 "지원에 나설 경우 태광산업의 기업가치와 일반주주의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같은 주장들은 태광산업이 흥국생명의 주주가 아니라는 점을 지목하고 있다.
흥국생명은 이호진 전 회장이 지분 56.30%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고,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을 합하면 지분 100% 전부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흥국생명의 법인주주는 대한화섬(10.43%), 티알엔(2.91%), 일주학술문화재단(4.70%) 등이다. 태광산업은 이호진 전 회장이 지분 29.48%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특수관계인 보유 지분을 합하면 54.53%다.
결국 태광산업은 14일 오후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공익적 목적에 기여하고 현재 보유 중인 가용자금을 활용한 안정적인 투자수익 확보를 위해 전환우선주 인수를 검토했으나, 상장사로서 기존사업 혁신 및 신사업 개척에 집중하기 위해 이를 인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일부에서 제기된 4000억원 규모 (상환)전환우선주 인수 등은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호진 전 회장이 지난 광복절에 이어 신년 사면복권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만큼,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해 10월 징역 3년의 형기를 채우고 만기 출소한 이 전 회장은 '출소 이후 5년간 취업 제한'으로 경영 참여는 불가능한 상태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 8월 이 전 회장이 특사 후보로 거론될 때에도 시민단체들의 거센 반발이 있었다"면서 "이번 유상증자 논란도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김소형기자 compac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