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동차 회사의 마케팅 담당 A씨는 최근 유럽 본사에 전화를 했다가 깜짝 놀랐다. 유럽 측 파트너가 '하차감'이라는 용어를 한국어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요즘 소비자들은 자동차의 성능이나 승차감 못지않게 하차감을 중요한 구매 기준 중 하나로 여긴다. 차에서 내릴 때 '오호' 하고 시선을 받을 수 있다면, 아무리 비싸도 기꺼이 지갑을 연다. 이 덕에 1억 중후반대부터 3억이 훌쩍 넘는 럭셔리카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수천만원의 계약금을 내고 2년 여를 기다려야 하는데도, 웨이팅 리스트가 늘어만 가는 한국 시장에 글로벌 본사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A씨는 "전체 판매량으로 따지면 중국이 당연히 더 높지만, 빠른 성장세는 한국을 따라올 데가 없다"며 불황 속에서도 활활 타오르고 있는 럭셔리카 시장의 뜨거운 열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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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예약해도 1년 넘게 기다려야 합니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최고급 모델 중 하나인 S580을 구입하기 위해 지난 4일 영업점에 문의를 해봤다. 돌아온 대답은 한결같았다. 해당 차량의 가격은 더 뉴 메르세데스 마이바흐 S580 4MATIC이 2억9360만원, 더 뉴 메르세데스 벤츠 벤츠 S580 4MATIC이 2억4170만원이다.
다른 브랜드의 럭셔리카들도 마찬가지다. 2억원에서 3억원대 모델들도 없어서 못 살 정도다. 운 좋게 계약을 하더라도 짧게는 1년 길게는 4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한국의 럭셔리카 시장은 지금 인기 대폭발이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아예 예약을 받지 않는 곳도 있다.
람보르기니의 경우 국내에서 판매하고 있는 전 차종의 계약이 이미 마감됐다. 람보르기니 딜러사 람보르기니서울 관계자는 "언제쯤 예약을 할 수 있을지 지금은 확답을 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천만원의 계약금을 내며 차량을 구입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지난 7월 국내 출시된 우라칸 테크니카의 가격은 3억원대. 출고 대기 기간은 1년여 정도다. 계약금은 4000만원. 이쯤은 양호한 편이다. 람보르기니가 지난달 국내에 선보인 우루스 퍼포만테의 출고 대기 기간은 3년 반이다. 차량 가격은 3억2000여 만원에 계약금은 2500만원이다. 아직 국내에 출시되지 않은 우루스S의 사전 계약도 이미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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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초고가 모델들이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며 실적에 힘을 보태고 있다. 벤츠코리아는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6년 연속 판매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14.4% 늘어난 6조1212억원이다. 포르쉐코리아는 지난해 매출액 1조294억원을 기록하며, 2년 연속 매출 '1조 클럽'을 달성했다.
람보르기니도 실적도 주목해 볼만하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람보르기니는 지난해 353대를 국내 판매했다. 전년보다 16.5% 증가했다. 올 1~8월 람보르기니는 국내에서 223대를 판매했다.
3억원대 럭셔리카 완판에…글로벌 자동차 본사도 '화들짝'
각 사에 따르면 벤츠코리아와 포르쉐코리아, 람보르기니 국내 매출의 글로벌 순위는 각각 5,6,8위다. 포르쉐코리아의 경우 아예 일본을 제치고 세계 6위에 이름을 올렸다.
매출도 매출이지만 'K-콘텐츠'의 힘 또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K-콘텐츠 덕에 한국 하면 왠지 힙하고 트렌디하다는 느낌을 글로벌 마케팅 관계자들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콧대높던 럭셔리카들이 유럽 본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한국 시장에 특별히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일례로 람보르기니는 우루스 퍼포만테를 전 세계 시장에 내놓은 지 1개월 만에 국내에 선보였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수입차 브랜드가 전 세계 시장에 신차를 선보인 후 한국 시장 출시까지는 6개월이 걸린다. 세계 최초 공개 후 한달여만에 국내에 선보이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포르쉐코리아의 경우 지난 4월 아시아 최초로 진행한 '포르쉐 이코넨, 서울' 개최지로 한국을 택했다. 당시 홀가 게어만 포르쉐코리아 대표는 "포르쉐는 한국 포르쉐 고객 및 팬들에 대한 관심이 높다"며 한국 시장에 같한 애정을 드러냈다.
벤츠코리아는 지난 6월 마이바흐 브랜드의 첫 양산차 출시 100주년을 기념해 '마이바흐 S680 에디션 100'을 100대 한정으로 내놓았는데, 이 중 무려 17대를 한국 소비자를 위해 판매했다.
지난해 4월에는 국내에서 유럽보다 한 달 여 먼저 더 뉴 S클래스 신형 론칭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뿐 아니다. 독일 본사의 고위급 임원까지 적극 나서고 있다. 베티나 페처 메르세데스-벤츠 AG 커뮤니케이션·마케팅 총괄은 지난달 서울 송파구 삼전초등학교 앞에서 녹색어머니회 회원들과 함께 교통안전 캠페인을 진행했다. ESG를 중시하는 한국 시장의 코드에 맞춘 글로벌 본사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대목.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신차를 국내 소비자에 먼저 소개하거나 본사 고위급 임원이 한국을 찾아 직접 시장 조사를 하는 등의 모습은 이제 뉴스도 안된다"며 "폭발적으로 시장이 커지고 있는 이 시기에 확실히 절대 우위를 굳히기 위해 럭셔리카들의 한국을 향한 구애와 관심은 더욱 커질 것 "이라고 말했다.
이미선 기자 alread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