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이 경영승계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사장(38)이 사장으로 승진하며 대표이사에 내정된 것을 시작으로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36)가 올해 말 예정된 2021년 정기 임원 승진 인사에서 전무에 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동안 그룹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던 삼남 김동선 한화건설 전 팀장(32)은 지난 4월 사모펀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스카이레이크)에 입사, 외부에서 경영복귀를 위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한화의 경영권 승계는 장남인 김 사장이 방산 등 화학 계열사를, 차남인 김 상무가 금융 계열사를, 삼남인 김 전 팀장이 유통과 레저 등 계열사를 중심으로 이뤄질 것으로 알려져왔다. 3세들도 그동안 각자 맡은 분야에서 맡은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며 저마다 경영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모습이다. 계열사 간 세부적인 사업과 3세의 지분 구조 관련 조율만 이뤄진다면 경영승계 작업이 급물살을 탈 수 있다. 다만 삼남인 김 전 팀장의 경영복귀 및 경영능력 검증 등은 한화 경영승계를 마무리하기 위한 숙제로 꼽힌다.
재계 안팎에선 김 회장이 오너 3세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그려진 큰 그림을 바탕으로 내년 초 빠르게 승계 작업을 마무리할 것이란 예상을 내놓고 있다. 정확한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력한 시기로는 내년 초가 거론된다. 내년 2월은 2014년 배임 혐의 등 불미스러운 일로 징역형을 선고받으며 경영일선에서 손을 뗐던 김 회장의 취업 제한이 종료, 경영일선으로 복귀가 가능한 시기다. 김 회장의 경영복귀는 '왕의 귀환'인 동시에 안정적 경영승계 과정의 '바람막이' 역할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다. 김 회장이 올해 창립 68년 기념사를 통해 위기 극복의 화두로 '지속가능성', '디지털 전환', '미래 창조' 등을 내세우며 혁신을 위한 조직 변화를 주문한 것도 세대교체 차원의 경영승계를 위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한화 경영승계의 마지막 퍼즐은 삼남인 김 전 팀장이다. 경영능력을 바탕으로 그룹 내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장남과 차남과 달리 제대로 된 직책을 맡고 있지 않다. 한동안 한화건설에서 경영수업을 받았지만 음주폭행 등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회사를 떠나 승마선수로 지냈고, 독일에서 종마사업과 외식사업 등을 운영했다. 올해 2월에는 미국 플로리다 웰링턴에서 열린 국제 마장마술 그랑프리 프리스타일에서 2위에 올랐다. 그런 그가 대회 이후 미국의 한 승마잡지 인터뷰에서 승마선수 은퇴를 선언했다. 은행투자가가 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그도 그럴 것이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김 전 팀장이 은퇴 의사를 밝히기 전인 지난해부터 부진한 사업영역을 털어내며 실적 위주의 사업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일본 홋카이도 지역의 대규모 프리미엄 리조트 개발 프로젝트를 비롯해 최근에는 국내 리조트 관련 사업 확대에도 나섰다. 리조트업계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긴축경영에 나서는 것과 달리 공격적 행보다.
재계 한 관계자는 "한화의 경영승계를 놓고 보면 방산·화학, 금융 계열사에 비해 레저·리조트 계열사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만큼 사업규모와 매출 확대를 위한 전략적인 선택인 듯 보인다"며 "레저업의 경우 다른 계열사에 비해 자율성과 창의성이 필요한 사업으로 한동안 경영일선에서 손을 뗐던 김 전 팀장이 적응하는 데 유리하다는 것도 고려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계의 예상과 달리 김 전 팀장은 지난 4월 한화와 관계없는 스카이레이크에 입사했다. 스카이레이크는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회장으로 있는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다. 잠재력 있는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해 직접 경영하거나 대주주로 참여해 투자 수익을 극대화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김 전 팀장은 2014년 한화건설 해외토건사업본부 과장으로 재직했고, 2016년에는 한화건설 신성장전략팀장을 지낸 바 있다. 음주 폭행의 불미스러운 일로 한동안 경영에서 손을 놓고 있었던 만큼 경영수업 일환으로 스카이레이크에서 투자 관련 업무 경험을 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호텔과 리조트업계는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아 인공지능 기반의 비대면 서비스 및 ICT 기반 맞춤형 편의 제공 플랫폼 등 기술 결합이 활발하게 요구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ICT 분야와 관련된 융·복합 산업분야의 투자 강점을 보유한 스카이레이크는 김 전 팀장이 경영수업을 받기에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김승연 회장과 진대제 회장은 1952년생 경기고 동창으로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팀장의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입사는 일종의 경영수업이라는 얘기다. 진대제 회장은 과거 삼성전자 사장 재직 시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수업을 도왔던 전담교사 중 한 명이다. 김 전 팀장의 ICT 등 신사업 투자 관련 경영수업은 향후 레저계열사의 M&A 투자 전략 수립 등의 경영능력을 인정받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증권가 한 관계자는 "최근 리조트와 호텔업계는 고객에게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음성인식, VR, 인공지능 등 ICT기술을 서비스에 접목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며 "클라우드 시스템을 통해 실시간 마케팅과 이종사업간 결합을 진행하는 것이 글로벌 리조트업계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전문가라는 점은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등의 경영복귀 명분으로 충분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실적 악화…개선 여부도 불투명 '산 넘어 산'
그러나 한화의 경영승계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레저·유통 관련 사업의 실적이 좋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레저 관련 핵심 계열사인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의 경우 최근 5년간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하락세(표 참조)를 보이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영향을 받으며 하락폭은 더욱 커졌다. 그룹차원에서 레저사업 키우기에 나서고 있지만 현재 상황대로라면 실적 개선 여부도 불투명하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올해 2분기까지 누적 매출은 2020억원에 불과하다. 전년 동기 대비 11%가 줄었고, 지난해 총 매출 6500억과 비교하면 절반이 되지 않는 수치다. 무엇보다 영업이익은 720억원 가량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전체 영업적자 251억의 3배에 달한다. 코로나19에 따른 매출과 영업이익 감소는 예상됐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하락폭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해 말부터 수익 창출을 위해 투자를 진행해왔던 일본 프리미엄 리조트 사업의 추가적인 투자를 진행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현지의 지역주민의 반발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지난해 유동성 확보를 위해 '식자재 및 급식사업'분야를 매각했고, 최근에는 골프장 골든베이 골프&리조트 매각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현재 운영 중인 사이판의 해외 리조트 매각을 위한 움직임도 분주하다. 경영승계를 진행하기 위해선 최악의 상황인 셈이다. 경영복귀 이후 신사업 추진에 차질이 생기면 경영능력 부재라는 평가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김 전 팀장은 과거 면세점 사업 등을 이끌었지만 고배를 마신 적이 있어 더욱 그렇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거나 백신과 치료제 개발과 함께 보복적 소비가 본격화되는 시기가 김 전 팀장의 경영복귀 시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식자재 및 급식사업 정리 및 골프장 매각 움직임 등에 대해 유동성 확보 차원은 아니라며 손사래를 친다. 전략사업(프리미엄 사업 추진 및 브랜드 빌드업)과 맞지 않은 사업부의 정리 및 전략적 자산 경량화 차원에서 진행된 경영전략 일환임을 내세우고 있다. 여수 벨메르 바이 한화호텔앤드리조트를 비롯해 신규 사업을 꾸준히 추진하는 등 운영 노하우에 기반을 둔 자산경량화 운영방식 도입 차원일 뿐이라는 것이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와 90년대 후반 출생 세대를 타깃으로 한 라이프브랜드 마티에를 론칭하며 프리미엄 빌라사업을 진행,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기술을 도입해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를 선보이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측은 "마티에 호텔의 경우 동부산(2022년), 평촌(2024년) 사업을 구체화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10개 이상의 체인 운영을 목표하고 있다"며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활용한 언택트 콘텐츠 도입 등도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레저업계의 상황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지만 꾸준한 투자와 새로운 시도를 통해 향후 실적 회복을 끌어낼 것이란 설명이다.
레저업계 한 관계자는 "한화의 레저 계열사의 사업 성적은 하락세를 보여 왔고,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의 경우 김 전 팀장의 경영능력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꼽혀왔다"며 "이런 면에서 공격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확대를 꾀하고 있는 리조트 사업이 수익성 개선을 위한 것인지, 경영승계를 위한 몸집 키우기인지 모호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호텔리조트업계가 공급과잉에 따른 과열경쟁을 통해 수익성 악화에 시달렸던 만큼 투자 확대를 매출·영업이익 확대로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는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풀어야 할 숙제"라며 "김 전 팀장의 경우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개선 및 경영능력 확대라는 과제도 함께 떠안을 수밖에 없는 점에서 경영승계가 수월하게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한편 한화는 3세와 관련된 경영승계에 대해 일절 언급을 꺼리고 있다.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강조한다. 한화 관계자는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의 투자 등은 코로나 등 경영환경의 변화에 따라 회사 경영 차원에서 사업전략을 새롭게 추진하는 부분이며 김 전 팀장과 관련된 움직임은 전혀 아니다"며 "김승연 회장이 건재한 상황에서 경영승계를 논의하기에는 시기적으로 맞지 않고, 결정된 것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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