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차 새 패러다임을 짜는 정의선, '한국판 뉴딜' 10년의 통큰 배팅으로 재계를 움직이다

이정혁 기자

기사입력 2020-07-24 07:46


최근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 등장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50)의 얼굴엔 자신감이 가득했다. 향후 10년을 건 '통 큰' 베팅에 대한 확신 덕일까. 자동차산업의 미래에 대한 원대한 꿈이 펼쳐지는 가운데, 이날 대회는 '게임 체인저'로서 정 부회장의 위치를 대내외에 다시 한번 각인시키는 자리가 됐다.

최근 언론에 정 수석부회장의 이름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정부 주요 행사부터 다른 대기업 총수들과의 만남 그리고 박원순 시장 조문까지 등장하는 장르가 버라이어티 하다.

그만큼 정 수석부회장의 최근 활동 범위가 '확' 넓어진 동시에 움직임 자체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처럼 최근 정 수석부회장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진 것은 향후 10년을 내다보고 지른 통 큰 베팅의 결과라는 분석이다. 미래차 개발을 통해 세계 자동차 시장의 판도를 바꾸려는 정 수석부회장의 빅 픽처가 구체화 되는 시기에 정부의 새로운 경제 정책까지 더해지며 제대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

여기에 정 수석부회장의 신중하면서도 세심한 행동이 최근 문제가 된 재벌 3세들의 잇따른 갑질과 대조되며, '인간 정의선'에 대한 호감도가 급상승하고 있다.

향후 10년을 내 건 베팅,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도 바꾼다

정 수석부회장은 일찍이 현대차그룹의 미래 방향성을 전기차와 수소차, 미래형 도심 항공 모빌리티 등 친환경 교통수단에 두고 관련 투자를 적극 진행해 왔다. 이런 정 수석부회장의 선견지명을 통해 현대·기아차의 전기차 수출이 급증하고 글로벌 점유율도 고속 성장 중이다.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전체 자동차 수출이 급감하는 상황에서도 현대·기아차의 전기차 수출은 되레 증가했다.

현대차의 상반기 전기차 수출은 2만9926대로, 전년 동기의 2만1633대보다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 연간 수출인 4만6041대의 65.0%를 상반기에 달성했다. 기아차의 전기차 수출 실적은 더욱 좋다. 기아차는 상반기 2만4006대를 수출해 1년 전 8667대의 2.77배에 달했다. 지난해 연간 수출량 1만7373대도 이미 넘어섰다.

현대차와 기아차를 합치면 올해 상반기에 5만3932대를 수출, 지난해 연간 수출량인 6만3414대의 85.0%를 달성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정부의 '한국판 뉴딜' 정책 발표로 현대차그룹은 날개를 달게 됐다. 한국판 뉴딜 정책은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해 탄소배출을 줄이는 '그린 뉴딜'이 핵심인데 이는 정 수석부회장의 친환경 미래 모빌리티와 지향점이 같다.

특히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의 메인 발표자로 참여해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날 정 수석부회장은 "현대, 기아, 제네시스 브랜드로 2025년까지 23차종 이상의 전기차를 내놓을 계획"이라며 "2025년 전기차를 100만대 판매하고 시장점유율 10% 이상으로 올려 전기차의 글로벌 리더가 되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재계에서는 정 수석부회장이 향후 10년을 내다보고 정부의 정책에 통 큰 베팅을 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를 통해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구조 개편도 주도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로 전기차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면 부품업계 지형도는 큰 폭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전기차는 기존 내연기관차의 엔진, 변속기, 클러치를 배터리와 모터로 대체하는 한편 연료탱크와 라디에이터 그릴, 각종 오일류 부품 등이 필요 없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자동차 한 대당 들어가는 부품 개수가 2만~3만개에서 1만여 개로 반토막 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따라서 기존 현대차그룹에 납품하던 3만여개의 부품 회사 가운데 3분의 1 정도만 살아남게 된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현대차그룹의 성장과 함께 해 온 만큼 정리 자체가 쉽지 않은게 현실이다. 하지만 '한국판 뉴딜'이라는 국가 정책에 현대차그룹이 보조를 맞추게 되면 협력업체에 대한 다양한 지원책이 동반될 것인만큼 자연스럽게 자동차 산업 생태계의 변화를 함께 추구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정 수석부회장의 이번 베팅으로 현대차그룹은 친환경 교통수단 회사로 새롭게 태어나는 동시에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며 자연스럽게 관련 산업계 구조개편을 선도하게 될 전망이다.

'K-배터리 동맹'이끌며 기업가로서 상종가, 리더들의 리더로 우뚝 선 정의선

재계 1~4위인 삼성, 현대자동차, LG, SK의 총수가 최근 잇따라 만남을 가져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5월 13일 충남 삼성SDI 천안사업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만났다. 두 사람이 사업 논의를 목적으로 단둘이 만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뒤이어 6월 22일에는 정 수석부회장이 LG화학 오창 공장에서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만나 전기차 배터리 부문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7월 7일에는 정 수석부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충남 서산에 있는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생산 공장에서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재계는 그동안 대기업 간 협력은 종종 있었지만 전문경영인이나 실무진이 아닌 총수가 직접 전면에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사건'으로 보고 있다. 특히 총수들간 만남의 구심점에 정 수석부회장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연결고리는 '포스트 반도체'라 일컬어지는 배터리다.

정 수석부회장이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 3사와의 협업을 직접 챙기는 것은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대비, 미래차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미래차의 경쟁력은 배터리의 경쟁력에서 나오는 만큼 고품질의 배터리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가 향후 자동차 제조업들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가 됐다. 실제로 배터리는 미래차의 대표주자인 전기차의 핵심 부품이다. 내연기관차로 따지면 엔진에 해당한다. 가격도 전기차 원가의 40%를 차지한다.

배터리 시장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인정받는 국내 빅3 업체 수장들과 국내 유일의 완성차 업계 수장인 정 수석부회장의 회동은 'K-배터리 동맹'으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또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힘을 모아 미래차 경쟁력 확보에 나서는 초유의 일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배터리를 넘어 하만카돈을 인수한 삼성그룹과는 전장을, SK그룹과는 통신 분야 등 미래차와 관련된 다양한 협력방안도 가시화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전기차 상용화는 현대차그룹 혼자 절대 이끌 수 없는 대기업 연대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 수석부회장의 최근 광폭 행보는 자연스럽게 국내 대기업 리더들을 리드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정 수석부회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배터리 3사가 한국 기업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서로 잘 협력해서 세계시장 경쟁에서 앞서 나가겠다"고 지속 협력 의지를 밝혔다.

30분 기다려 일반인과 함께 조문한 '인간 정의선'에 더 큰 기대

'기업인 정의선'이 한창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최근 '의외'의 모습이 노출되면서 큰 화제가 됐다. 정치권에서 박원순 시장 조문 문제를 놓고 시끄러웠던 지난 11일, 정 수석부회장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가 아닌 시민 분향소를 찾은 것.

분향소가 열기 전부터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던 정 수석부회장은 30분 뒤 조문 순서가 되자 다른 이들과 함께 박원순 시장의 영정 앞에 서서 짧게 묵념을 한 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이름과 연락처를 적은 후 조용히 차를 타고 떠났다.

현대차 관계자는 "(수석부회장 자격이 아닌) 개인적인 차원에서 일반인을 위한 분향소에 방문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수석부회장 입장에서는 박 시장이 아름다운 재단에서 활동하던 시절부터 친분이 있었고 최근에는 삼성동 글로벌비즈니스센터 건립과 관련해 서울시와 긴밀한 업무협의를 해 왔던 조문 문제가 고민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 순간 정 수석부회장은 그룹을 대표하는 '기업인 정의선'이 아닌 '인간 정의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으로 대중의 눈높이를 맞췄다는 평가다.

이처럼 정 수석부회장은 평소 기업인으로서는 저돌적이고 거침없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면에는 신중하고 스마트한 이미지도 겸비했다.

특히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밥상 머리' 교육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철저한 가정교육을 통해 정 수석부회장은 재벌 3세 답지 않게 소박하고 겸손하다는 평이다. 최근 재벌 2~3세들이 갑질 등으로 논란이 된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현대차그룹은 복잡한 직급체계에다 보수적이면서도 남성적인 이미지가 유독 강했던 회사였다면 정 수석부회장이 2018년 9월 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을 맡은 이후에는 혁신과 소통이 강조되며 그룹 내에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뚝심과 우직함의 대명사 였던 현대차 그룹이 3~4년 내 미래차 기술을 선도하는 게임체인저가 되기 위해 빠르면서도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조직이 된 것.

재계 관계자들은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미래차란 통 큰 베팅을 통해 추진력과 스마트함을 인정 받은 상황이다"며 "여기에 소박하고 겸손하다는 평가가 더해지며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 '본받고 싶은 상사'로 꼽히는 등 조직 안팎에서 더 큰 기대를 갖게 하는 경영인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정혁 기자 jjangg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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