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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모두 출가 시키고 부인과 함께 농촌에서 거주한다는 78세 남자가 가족들과 함께 외래진료로 병원을 방문했다. 그는 2013년 건강검진 당시 폐의 '간유리 음영 결절'이 발견됐고, 의사로부터 수개월 후 흉부 CT를 다시 찍어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폐암' 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 이후 흉부 CT를 찍지도 않았고, 자녀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 기침 증상이 심해져 흉부 CT검사를 받았는데 간유리 음영 결절은 이미 진행성 폐암으로 변해 있었고, 주변 림프절과 반대편 림프절에도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였다. 만약 2013년부터 꾸준히 검사를 받다가 조기에 수술을 했다면 완치를 기대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완치를 기대하기 매우 힘든 상태가 됐다.
국내 암 사망률 1위는 폐암이다. 폐암은 초기에 발견되면 완치를 기대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매우 진행된 상태로 발견돼 사망률이 높은 것이다. 하지만 최근 건강검진을 받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초기 폐암의 발견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가장 믿을 만한 폐암 검진방법은 저선량 흉부 CT(컴퓨터단층촬영)를 찍는 것이다. 저선량 흉부 CT는 일반 흉부 CT에 비해 방사선량은 10분의 1 수준이지만 매우 작은 폐의 결절도 찾아 낼 수 있다.
간유리 음영이란 흉부 CT에서 보이는 폐의 내부에 뿌옇게 유리를 갈아서 뿌려 놓은 듯한 모양이 보이는 상태이다. 폐 결절이란 3㎝ 이하의 덩어리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고형 결절은 결절의 내부가 진한 음영으로 돼 있는 반면, 간유리 음영 결절은 결절의 내부가 흐리고 뿌옇다.
간유리 음영 결절은 암이 아닌 경우가 더 많고, 만약 폐암이더라도 아주 초기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의사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명확한 진단을 듣지 못한 환자들이 답답해하거나 혼란을 느끼고 병원을 옮겨 찾아가기도 한다. 필자의 진료실에도 다른 병원에서 명확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며 답답한 마음에 찾아오는 이들이 종종 있다.
건강검진에서 간유리 음영이 발견됐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간유리 음영 결절이 1~3달 뒤에도 계속 보이는지, 아니면 작아지거나 없어지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염증성병변의 경우엔 간유리 음영이 1~3개월 정도 뒤에는 크기가 작아지거나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의사들이 1~3개월 후 CT를 다시 찍어보자고 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간유리 음영 결절의 크기다. 1~3개월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보이는 간유리 음영 결절이 있다면, 그 결절의 크기가 매우 중요하다. 결절이 크면 클수록 암일 가능성이 점점 높아진다. 크기가 1㎝ 미만이면 정기적으로 추적검사만 하자고 권유하지만, 크기가 1㎝ 이상인 경우엔 수술로 조기에 절제하는 것을 고려해 봐야 한다.
세 번째는 간유리 음영 결절의 속성이다. 결절 내부가 완전히 간유리 음영으로만 되어 있는 경우를 '순수 간유리 음영 결절'이라고 하고, 간유리 음영 내부에 고형 결절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를 '혼합 간유리 음영 결절'이라고 부른다. 이때는 간유리 음영 자체의 크기도 중요하지만, 간유리 음영 내부의 고형 결절의 크기가 매우 중요하다.
만약, 간유리 음영 내부의 고형 결절의 크기가 6㎜ 이상일 때는 1~3개월 후 다시 CT를 찍어 볼 것이 아니라 바로 양전자 단층촬영(PET/CT) 등을 통해 폐암의 가능성을 먼저 평가한 뒤 수술적 절제를 고려해야 한다.
간유리 음영 폐암의 수술은 일반적인 폐암 수술과는 다르다. 폐암 수술의 기본 원칙은 아무리 초기 폐암이라고 하더라도 한쪽 폐의 절반 가까이를 떼어내는 폐엽 절제술과 폐 주변 및 종격동의 림프절을 모두 제거 하는 종격동 림프절 청소술을 해야 한다. 큰 수술이기 때문에 수술 후 폐 기능의 감소와 합병증의 위험이 높고 수술 직후 집중치료와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간유리 음영 폐암은 폐를 적게 잘라도 예후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간유리 음영이 명확한 폐암은 폐를 크게 자르는 폐엽 절제술을 받을 필요는 없고, 폐를 일부분만 떼어내는 폐 구역 절제술이나 폐 쐐기 절제술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수술 중 림프절 청소술을 생략할 수도 있다. 폐를 적게 자르고 림프절 청소술을 생략한다면 수술 후 전신상태의 회복이 훨씬 바르고 합병증도 매우 적어서 빠른 일상생활의 복귀는 물론 삶의 질의 저하가 거의 없다.
수술 범위(폐엽 절제술, 폐 구역 절제술, 폐 쐐기 절제술, 림프절 청소술)는 간유리 음영의 속성(간유리 음영의 크기, 내부 고형 결절의 크기, 간유리 음영과 내부 고형 결절의 크기의 비율)으로 결정할 수 있으며, 정확한 계획을 바탕으로 치료한다면 최소한의 절제만으로도 완치할 수 있다.건강검진에서 간유리 음영이 보인다는 말을 들는 다면 다음을 기억하자.
첫째, 추적 검사를 꼭 받아야 한다.
둘째, 추적검사 후에도 간유리 음영 결절이 계속 있다면, 결절의 크기(직경)가 1㎝ 이상인지, 이전보다 크기가 커졌는지(혹은 줄어들었는지)를 꼭 확인해야 한다. 만약 크기가 1㎝ 이상이거나 크기가 커졌다면 수술적 절제에 대해 상담해 볼 필요가 있다.
셋째, 간유리 음영 결절은 그것이 설령 폐암이라 하더라도 진행이 매우 느리기 때문에, 수개월간 추적검사를 받으며 경과 관찰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이 암이 진행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넷째, 수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수술의 범위를 꼭 물어보고, 적절한 치료 계획을 의사와 환자가 함께 논의해야 한다.
조그마한 구멍만 뚫고 수술하는 내시경 장비를 넣어 진행하는 최소침습수술법이 발전해 있는 덕택에 수술은 매우 안전하게 이뤄진다. 결절의 위치를 정확하게 표시해주는 CT나 네비게이션기관지경을 이용해 작은 결절도 쉽게 찾아서 떼어낸다. 수술 후 고통이 적고 회복도 빠르다.
결론적으로, 간유리 음영 폐암인 경우 최소침습 흉강경수술을 통하면 최소한의 피부 절개 및 폐 절제만으로 100% 완치가 충분히 가능하다.
문영규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흉부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