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그룹 계열사인 제주항공이 급성장, 주축기업이 되면서 애경의 후계 구도에도 변화가 생기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24일 재계 및 관련업계에 따르면 제주항공의 2017년 매출은 9964억원, 영업이익 1013억원으로 2016년보다 각각 33.3%, 73.4% 증가했다. 매출의 경우 과거 애경그룹의 주력이었던 애경산업(6289억원), 애경유화(9598억원)를 훌쩍 뛰어넘어 애경그룹내 비중이 17%에 달하고 있다. 제주항공이 2015년 6081억원의 매출로 그룹내 비중이 11%였던 것과 비교하면 2년만에 6%포인트나 끌어올렸다. 더욱이 각 증권사들의 리포트를 종합하면 제주항공의 올해 매출이 1조3000억원대를 기록, 급성장세가 이어지면서 그룹내 비중이 20%를 돌파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런 제주항공의 성장에는 안용찬 부회장이 한가운데에 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2006년부터 제주항공을 맡은 안 부회장은 "1등 브랜드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평소 소신대로 제주항공을 1위 저비용항공사(LCC)로 우뚝 서게 했다.
"안용찬 부회장, 대표이사 교체 후 독자 경영체제 구축"
그동안 애경그룹은 장영신 회장을 정점으로 3남1녀 자녀와 사위가 계열사를 맡아 '가족경영'을 해왔다. 또 그룹 총수는 장 회장의 장남인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이 잇는 모양새다. 채 총괄부회장이 그룹 지주사인 AK홀딩스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데다 최대주주이기 때문.
그런데 지난해 7월 그룹내 오너 일가의 경영권에 변동이 있었다. 안용찬 부회장이 생활항공부문장 자리를 내려놓으면서 20여년 만에 애경산업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난 것. 그리고 장 회장의 차남인 채동석 애경그룹 부회장이 이를 넘겨받았다. 안 부회장이 제주항공만 맡게 된 것이다. 제주항공이 급성장, 그룹의 주력기업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단행된 것이어서 재계는 애경의 경영권 변화 가능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최근들어서는 일각에서 안 부회장이 제주항공을 독자적으로 경영하게 될 것이라는 성급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장영신 회장이 안용찬 부회장을 상당히 높게 평가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이런 이유로 애경그룹 안팎에서 (장영신 회장이) 안 부회장에게 (제주항공 경영권에) 상당한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장 회장을 대신해 사실상 애경그룹을 총괄하던 채형석 총괄부회장이 그동안 제주항공 경영에도 일정 부분 관여해왔기에 이는 주목할만한 조짐이다.
재계 뿐만 아니라 항공업계에서도 비슷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안용찬 부회장이 전문성을 인정받아 경영능력에 대한 평가가 좋다"며 "제주항공이 초기에는 어려웠지만 지금은 상당한 반열에 올려놓은 게 안용찬 부회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같은 이유로 장영신 회장이 안 부회장을 상당히 신뢰해 제주항공에 대한 오너십을 부여할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다"며 "안 부회장의 아내이자 장 회장의 외동딸인 채은정 부사장의 위상을 감안할 때 이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업계는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항공업계 관계자도 "지난해 11월 제주항공 대표이사 사장이 교체됐는데, 신임 이석주 사장은 안용찬 부회장의 신임인 두터운 사람"이라며 "대표이사 사장 교체 이후 안 부회장이 독자적인 경영체제를 구축했다는 얘기가 업계 일각에서 돌고 있다"며 독립 경영에 무게를 뒀다. 제주항공 커머셜본부 총괄 부사장에서 대표이사로 승진한 이석주 사장은 애경산업에서도 안 부회장과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경영권 독립은 '애경 가족경영'에 맞지 않아"
그러나 안 부회장이 제주항공의 경영권을 갖고 독립하는 데는 결정적인 걸림돌이 있다. 안 부회장이나 아내인 채은정 부사장이 경영권을 가질만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 제주항공의 지분구조를 보면 애경그룹 지주회사인 AK홀딩스가 56.94%를 갖고 있고 안 부회장의 지분율은 0.59%에 불과하다. 채은정 부사장은 아예 지분을 갖고 있지 않다. 또 제주항공을 지배하고 있는 AK홀딩스의 최대주주는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채형석 부회장으로 16.14%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채은정 부사장의 지분율은 3.85%에 그친다. 지분율로 보면 안 부회장·채 부사장 부부의 독립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그래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둘째 사위인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현대차그룹의 금융계열사인 현대카드·현대캐피탈·현대커머셜·현대라이프생명을 독립적으로 경영하고 있는 것과 유사한 형태가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정태영 부회장도 지분을 갖고 있지 않음에도 현대차그룹 금융계열사에 대해 오너십을 갖고 경영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정 부회장과 아내인 정명이씨는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지분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해 애경그룹 고위 관계자는 "채형석 총괄부회장과 안용찬 부회장은 오래전부터 자주 머리를 맞대고 경영을 논의했다"면서 "특히 제주항공이 초기에 적자로 자본잠식에 빠졌을 때 그룹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는 등 채 총괄부회장의 리더십이 제주항공의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주항공은 채 총괄부회장의 강력한 의지로 시작한 사업"이라며 "애경그룹은 그동안 가족경영을 해왔고 앞으로도 제주항공에 대한 가족경영의 구도가 깨질 가능성은 없다"고 덧붙였다. 안 부회장이 제주항공을 분리해 독자적으로 경영할 가능성은 없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애경그룹 관계자도 "신임 이석주 사장은 안 부회장 뿐만 아니라 채 총괄부회장의 신임을 얻고 있는 인물"이라며 "이 사장 선임 후 안 부회장이 독립 경영체제를 구축한다는 소문은 맞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제주항공 내부사정에 밝은 항공업계 관계자도 "안용찬 부회장이 애경산업에서 손을 떼는 등 맡은 분야가 적어졌다"며 "이를 제주항공에 집중하는 것으로 해석하면 제주항공에 영향력을 확대한 것일 수 있지만, 관여하는 부문이 줄어 오히려 그룹 내에서 위상이 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제주항공 임직원들과 접촉해보면 (안용찬 부회장이) 사위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경제에디터 jwj@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