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잘 키운 유스 하나, 열 스타 안부럽다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7-07-07 01:43




하나 같이 'K리그가 위기'라고 말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악재가 쏟아지며 팬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경기력만큼은 최고라고 자부했지만, 올시즌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단 한 팀도 8강에 진출시키지 못하며 그나마 유지하던 체면마저 구겼다. K리그는 '축구 굴기'를 앞세운 중국 슈퍼리그와 천문학적인 중계권료로 무장한 일본 J리그의 틈바구니 속에서 길을 잃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던가. 조금씩 희망의 싹이 움트고 있다. 공을 들였던 유스 시스템이 꽃을 피우고 있다.

이전에도 물론 유스 출신 선수들은 K리그의 젖줄이었다. 대표 선수 대부분이 K리그 유스가 만들어낸 작품들이다. 하지만 성장과정이 달랐다. 유스 출신이 곧바로 1군에 진입하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 였다. 설령 1군에 이름을 올렸다해도 경기에 출전하기는 쉽지 않았다. 성적에 목을 맨 각 팀들은 유스 출신들을 쓰는 대신 검증된 영입파를 더 중용했다. 어렸을때부터 특출난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대학 혹은 임대를 거친 뒤 1군에 올렸다. 하지만 올 시즌 분위기는 다르다. 유스 출신 중용이 눈에 띈다.

'핫가이' 유주안(19·수원)이 대표적이다. '수원 유스가 만든 신데렐라' 유주안은 지난달 25일 강원과의 홈경기에서 데뷔전 데뷔골을 신고했다. 1995년 수원 창단 이래 처음으로 데뷔전 데뷔골을 기록한 신인 선수였다. 깜짝 활약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사흘 뒤 대구 원정경기에서도 득점에 성공했다. 디종으로 이적한 권창훈 이후 가장 주목받는 프랜차이즈 스타다. 유주안의 등장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유주안이 말그대로 '수원이 만든 선수'이기 때문이다. 매탄중(수원 U-15)-매탄고(수원 U-18)를 거친 유주안은 수원식 유스시스템의 정수다.

인천은 유스 시스템을 가장 적극적으로 운영하는 팀이다. 인천 유스 출신은 이미 국내외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메디컬 테스트에서 탈락했지만 박명수가 독일 뉘른베르크 입단 직전까지 갔고, 정우영은 최근 독일 분데스리가 최고의 명문 바이에른 뮌헨행을 확정지었다. 이 밖에 문상윤 진성욱(이상 제주) 김용환 이태희 등은 K리그에서 자리잡았다. 인천은 올 시즌 광성중(인천 U-15)-대건고(인천 U-18) 전성시대를 이끈 김진야 김보섭 명성준, 3명의 유스 출신 선수를 곧바로 1군으로 '콜업'했다. 1일 '단두대매치'로 불린 광주와의 경기는 인천 유스의 힘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김진야 김보섭 명성준이 모두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데 이어 김진야와 김용환이 결승골을 합작해냈다.

포항, 수원, 인천, 울산, 전남 등은 K리그에서 손꼽히는 유스시스템을 갖춘 팀이다. 상대적으로 지방에 있는 시도민구단은 이 대열에서 소외돼 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강원, 광주, 대구 등과 같은 구단에도 유스 출신이 등장했다. 과거처럼 대학을 거친 선수들이지만 자체 생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강릉제일고(강원 U-18)를 거친 박요한은 '강원 유스 1호' 선수다. 그는 스타들을 폭풍 영입한 강원안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제주와의 경기에서는 데뷔골까지 넣었다. 광주에는 금호고(광주 U-18)에서 황희찬(잘츠부르크)와 쌍벽을 이뤘던 차세대 스트라이커 나상호가, 대구에는 현풍고(대구 U-18)를 졸업한 신창무가 출전시간을 늘려가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2009년부터 K리그에 속한 팀들의 유스팀 운영을 의무화했다. 프로 구단들의 체계적인 교육을 앞세워 한국축구의 미래를 키워내겠다는 의도였다. 2013년부터 실시한 23세 이하 선수 의무 출전 규정과 맞물려 어린 선수들의 가치가 올라가며 유스 출신들이 중용되기 시작했다.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잘하면 프로에서 바로 뛸 수 있다'는 동기부여가 유스팀들 발전의 촉매제가 되고 있다. 유스 출신들이 빠르게 녹아들며 리그에도 활력이 더해지고 있다. 특히 유스 출신들은 서포터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만큼 스타 선수들의 해외 이탈로 고민하고 있는 K리그에 큰 힘이 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유스 출신 선수들이 자리잡으며 K리그가 자생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모기업의 투자가 쉽지 않은 만큼 스스로 자생력을 키워 활로를 열어야 한다. 답은 '선수 육성'이다. 단순히 성적을 위한 '유망주 키우기'가 아니다. 산업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중국과 일본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곁에 두고 있는 만큼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할 수 있다. 100억짜리, 200억짜리 선수들을 만들어낸다면 구단 운영비를 해결할 수 있다. 축구 산업에서 제품은 마케팅이 아닌 선수다. 또 다른 손흥민(토트넘), 이승우(바르셀로나)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한국 축구는 다시 한번 도약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무궁한 가능성을 가진 유스 출신들이 답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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