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는 일반인에게는 미궁의 세계이다. 아프면 불안하고 의사와 병원에 궁금점도 많지만 풀기란 어렵다. 알아두면 도움되고 읽으면 궁금증이 풀리는 의료계 이야기를 연재한다.<편집자 주>
이런 검사는 수술 자체보다 마취과의 필요로 하는 것이다. 어느 병원이든 수술장에서는 마취과가 '갑'이다. 모든 수술은 마취과 의사가 OK해야 시작된다. 이를 "마취과에서 수술방을 열어준다"고 한다. 집도과에서 애걸복걸해도 마취과에서 수술방을 안 열면 소용없다. 이처럼 마취과가 갑인 이유는 환자의 수술 중 생명 유지를 마취과 의사가 전담하기 때문이다. 항공사 회장이 타고 있더라도 비행 중 안전을 위해 기내에선 기장이 절대 명령권을 갖는 것과 같다.
마취과에서 수술방을 열어주는 전제 조건이 전신마취에 대비한 수술전 체크다. '프리오피(pre-op)'라고 하는데, 혈압·혈액검사, 심전도검사, 흉부엑스레이 등이 기본이고 다른 검사가 추가되기도 한다. 이 뿐 아니라, 환자의 전신건강 상태에 따라 수술 담당과에서 다른 진료과의 의견도 받아서 마취과에 내야 한다. 이를 '컨설트'라고 부른다. 위암 수술이 예정된 외과 환자가 심혈관에 스텐트를 꽂고 있으면, 심장내과에서 "스텐트는 이 환자 수술에 리스크가 없다"는 컨설트 회신을 받아가야 하는 것이다. 만약 이 때 심장내과 의사가 별도 검사를 요구하면 시행해야 한다. 수술이 미뤄져도 어쩔 수 없다. 환자 나이가 많고 만성질환을 갖고 있을수록 필요한 컨설트도 늘어난다.
'바깥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든 간에, 프리오피와 컨설트 결과가 모두 도착할 때까지 마취과 의사는 수술방을 열지 않는다. 수술 중 환자 안전을 책임지는 마취과로서는 당연한 원칙이다. 그래서 외과 계열 수련의, 전공의들은 수많은 환자마다 수술 예정시각 이전에 프리오피와 컨설트 회신을 받아서 마취과에 '가져다 드리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이동혁 기자 do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