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닥터]'치맥'이 치질을 악화시킨다?

이규복 기자

기사입력 2017-06-07 09:18

[헬스&닥터]'치맥'이 치질을 악화시킨다?

치질 환자들에게 여름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괴로운 시기다. 여기에 무더운 여름이면 곳곳에서 벌어지는 '치맥(치킨과 맥주) 파티'도 멀리해야만 하는 안타까운 유혹이다.

분비물과 땀으로 항문 주변의 가려움이 심해지고, 무더위를 피하려고 먹은 차가운 음식이 설사를 유발해 증상이 악화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항문질환의 원인을 변비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설사 역시 치질의 원인이 된다. 설사에 포함된 분해되지 않은 소화기관의 소화액이 항문에 손상을 주기 때문이다. 잦은 설사는 항문 울혈을 일으키고 점막을 손상시켜 치열을 유발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또한 설사로 인한 오물이 항문에 붙어 항문소양증 질환과 염증을 악화하는 원인이 된다.

무더위를 잊기 위해 밤에 자주 찾게 되는 '치맥'은 항문 건강에 악영향을 주어 치질을 유발시킬 수 있다. 차가운 맥주를 섭취하면 혈관이 확장되면서 압력이 높아져 항문 주변 조직이 함께 부어오르고 혹 같은 덩어리가 항문 밖으로 탈출 하는 '치핵'을 유발한다.

기름진 치킨은 변비를 유발시키는데 변비 때문에 배변 시 항문의 상처가 지속적으로 생기게 되면, 상처에 염증이 생겨 항문이 좁아지고 결과적으로 '만성 치열'로 발전하게 된다.

차갑게 살짝 얼린 과일과 아이스크림 등 찬 음식으로 인해 설사를 자주 한다면 항문이 곪아서 고름이 터지는 '치루'를 주의해야 한다. 설사를 하다 보면 항문선이 세균에 오염되면서 염증을 일으키고 결국 항문 주위에 농양이 생긴다. 이 항문 농양이 완치되지 않은 채 고름이 생기고 터지기를 반복하다 보면 치루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치질은 한번 발병하면 재발률이 높아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항문질환이 의심되는 사람이라면 여름철 야외 활동 시 같은 자세를 오래 유지해야 하는 자전거 타기, 낚시, 등을 피하는 것이 좋다. 장시간 같은 자세가 계속될 경우 항문에 힘이 집중적으로 가해지기 때문이다.

용변을 볼 때도 항문에 오랜 시간 힘이 가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평소 변기에 10분 이상 앉아 있지 않은 배변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 가급적 스마트폰이나 신문 등을 들고 가지 않는 것이 좋다. 변이 잘 나오지 않거나 변비 증상이 있을 때는 배에 과도한 힘을 주거나 장시간 앉아 있지 말고 다시 변의를 느껴질 때 시도하는 것이 낫다.

용변 처리 습관도 중요하다. 용변 후 휴지로 항문을 닦으면 항문 주름과 주름 사이까지 깨끗이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비데나 샤워기를 이용하여 가급적 물로 세척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수압이 너무 세면 오히려 치질 질환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신체 상태에 따라 수압을 '약'이나 '중'으로 조절해 사용해야 한다. 사용 횟수나 시간도 용변을 본 후 하루 1~2회 정도, 3분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일 치질 환자라면 전자식 비데 보다는 샤워기형의 수동 비데를 설치하여 가볍게 마사지하듯이 항문 주변을 씻는 것을 추천한다. 배변 후 자신의 체온과 비슷한 온도의 물을 받은 다음 3~5분 동안 좌욕을 하면 청결한 항문 관리뿐만 아니라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해주어 치질을 예방할 수 있다. 시간은 3분 정도가 적당한데 노래를 한 곡 정도 틀어두면 시간을 가늠하는데 도움이 된다.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것만으로 치질 증상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증상이 더 심해지기 전에 하루빨리 전문의를 찾아 치질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치질은 증상에 따라 총 4기로 나눌 수 있다. 1기는 배변 시 피가 묻어나는 증상이 나타나며, 더 나아가 배변 시 혹 같은 치핵이 느껴지다가 저절로 항문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 반복되는 상태가 2기이다.

보통 치질 초기인 1, 2기 단계에서는 식이요법, 변 완화제 사용, 좌욕 등 배변습관을 교정하는 것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그러나 치핵이 더 밀려나와 인위적으로 치핵을 넣어야 들어가는 상태인 3기나, 치핵을 손으로 넣어도 다시 나오거나 아예 들어가지 않는 상태가 4기가 되면 수술 외에는 방법이 없다.

치질 수술 후에는 금주하면서 치질 재발의 원인이 되는 패스트푸드, 자극적인 음식, 커피 등을 삼가고 채소와 과일 등 식이섬유를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좋다. 불가피하게 술자리에 참석해야 할 때는 가급적 공복에 마시는 것을 피하고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이 도움이 된다. 주로 앉아서 일하는 직장인들은 수시로 스트레칭을 해서 몸의 긴장 풀어주고 항문압이 높아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치질은 질환 부위의 특성상 주변에 알리기 껄끄럽고 바쁘단 핑계로 치료를 늦추다가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까지 발전하기 쉽다. 치질 증상이 의심된다면 지체하지 말고 바로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아야 한다.

간혹 치질을 변비약이나 치질약으로 쉽게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환자분들이 있는데, 대장을 자극하는 약을 장기간 복용하면 흔히 장이 '게으른 장 증후군'에 빠져 약 없이는 일을 하지 않는 등 오히려 증상이 더 악화될 수 있다.


유기원 메디힐병원 외과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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