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보사 도 넘은 '갑질' 영업…자살 특약 보험금 지급 버티기?

이규복 기자

기사입력 2016-05-27 08:54


생명보험사(생보사)들이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벌이는 '갑(甲)질'에 국민적 비난이 일고 있다. 가입시킬 땐 왕처럼 받들며 '고객'으로 대우하더니 막상 보험금을 지급할 때가 오자 '소송'으로 대응하며 지급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발단은 '자살 특약'이다. 생보사들이 2010년 4월 이전에 판매한 재해사망 특별계약 상품 약관에는 '가입 2년 후에는 자살 시에도 특약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명시돼 있다. 2014년 고객들이 이 자살 특약에 의거해 보험금지급을 요청하자 생보사들은 이 약관이 실수였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이에 고객들이 금감원 등에 민원을 제기했고, 금감원은 생보사들에게 보험금 지급을 권고했으나 생보사들은 이를 이행하지 않고 법적 대응에 나섰다.

2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2년을 끈 법적 소송은 지난 12일 대법원이 교보생명에게 미지급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생보사들은 또 다시 보험금지급을 거부하고 있다. 이유는 소송기간 동안 이미 지급시한이 지났다는 논리다. 이에 지난 23일 금감원이 나서서 생보사들에게 다시 자살보험금 지급을 권고했다. 금감원은 소멸시효 경과 건은 물론 소송으로 인해 늦어진 시간만큼 이자까지 더해서 지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생보사들은 소멸시효 경과 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나오기 전에는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며 또 다시 버티기에 나섰다.

ING생명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이 난 자살보험금 미지급금에 대해서는 지급을 진행하고 있다"며 "소멸시효가 지난 건과 금감원이 월말까지 제출하라는 지급계획서에 대해서는 내부 회의 중"이라고 밝혔다. 삼성생명은 "아직 지급 여부에 대해 확정된 내용은 없으며, 현재 내부적으로 논의 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동부생명 관계자도 "관련 부서에서 논의 중인 것으로 안다"며 "금감원에 보고할 계획서나 소멸시효 경과 건, 미지급건 등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아직 결정된 사안이 없다"고 말했다.

생보사들은 이번 대법원 판결은 교보생명이 진행하던 소송 중 일부에 대한 것뿐이며, 내용 역시 소멸시효 경과 건이 아닌 미지급건에 대한 명령이라는 주장이다. 이들 생보사들은 소멸시효에 관한 대법원 판결이 결정되면 이후 지급에 대해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알리안츠생명보험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아직 어떤 사항도 결정된 바 없다"며 "소멸시효 경과 건에 대한 소송 중 일부는 보험사가 승소한 경우도 있어서 보험사들이 일괄적으로 지급하겠다고 결정하기에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소멸시효 경과 건에 대한 보험사들의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라며 "일부 보험사의 경우 소멸시효 경과 건에 대해 2심까지 승소한 경우도 있어서 금감원의 지시처럼 일괄 지급을 결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금감원에 따르면 2016년 2월 26일 기준으로 자살보험금 미지급건은 계약건수로 2980건, 금액은 2465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소멸시효가 지난 계약건수는 2314건(78%), 금액으로는 2003억원(81%)에 해당한다. 보험사들이 소송으로 시간을 끌면서 지급해야 하는 보험금의 80% 이상을 줄인 셈이다. 계약건수로는 삼성생명이 877건으로 14개 보험사 가운데 가장 많았고, 금액으로는 ING생명이 815억원으로 가장 규모가 크다. ING생명과 삼성생명(607억원), 교보생명(265억원), 알리안츠생명(137억원), 동부생명(140억원) 등 상위 5개사는 지살과 관련해서 지급해야 할 금액이 100억원을 상회한다. 한화생명(97억원)과 신한생명(99억원)도 100억원에 육박했다.

생보사들이 소멸시효 경과 건에 대해 지급을 미루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급해야 할 금액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법적으로 소멸시효 경과 건에 대한 미지급이 옳다고 확정될 경우 각 보험사들이 줄일 수 있는 지급금 규모는 절반 이상이다. ING생명은 지급해야 할 금액 815억원 중 688억원이 소멸시효 경과 건이다. 삼성생명은 607억원 중 431억원, 교보생명은 265억원 중 213억원, 알리안츠생명은 137억원 중 122억원, 동부생명은 140억원 중 123억원을 아낄 수 있는 셈이다.

이처럼 생보사들이 버티기에 들어가면서 여론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보험사 자신들이 만든 약관을 부정하고 약관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 가입자들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기욱 금융소비자연맹(금소연) 사무처장도 "일부 생보사들이 자살보험금을 인정한 최근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지급하고 있지 않는 것은 심히 유감"이라며 "당국은 이 같은 생보사의 행태에 강력히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금감원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자살보험금의 지급을 거부하는 것은 소비자들의 신뢰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으로 면허취소나 영업정지 등 법에서 정한 최고 수위로 처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금감원은 향후 대법원에서 민사상 소멸시효 완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보험사가 당초 약속한 보험금을 모두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법당국의 판단을 무시하는 것이 아닌 보험사들의 부당이익에 대한 제재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라며 "아직까지는 보험사들이 지시에 따르지 않고 있다는 판단을 내리기에는 이르기 때문에 월말까지 계획서 제출 여부와 내용을 분석한 후 후속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금감원은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보험업법 위반행위에 대해 권한에 따라 검사·제재 및 시정조치를 일관되게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소연은 "보험사들이 대법원 소송에서 지고 금감원이 소멸시효에 상관없이 지급하라고 하니 '배임행위다' '자살이 증가한다'는 등의 핑계를 대고 있다"며 "일부 보험사들이 당국의 명령에도 조직적으로 항거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라고 비난했다.

현재 법원에 계류된 8건의 소멸시효 관련 소송 대부분이 1심과 2심에서 보험사가 이겼다. 만일 대법원에서 보험사의 손을 들어줄 경우 보험사들은 소멸시효 건에 대한 미지급 명분을 갖추게 된다. 향후 대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금감원이 어떤 조취를 취할지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규복 기자 kblee341@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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