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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한국을 사랑한 일본인, '경정 대부' 구리하라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15-10-22 20:39


◇구리하라 고이치로 선생이 21일 경기도 미사리 경정장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제공=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경정사업본부

구리하라 고이치로 선생(67·일본)은 '한국 경정의 대부'다.

일본에선 스타였다. 1969년부터 1999년까지 30년 간 물살을 갈랐다. 현역시절 수득상금만 11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2001년 일본에서 쌓은 명예를 스스로 내던지고 맨주먹 밖에 없던 한국 경정계에 투신했다.

제대로 된 보트, 모터도 없던 현실을 개탄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보트, 모터를 일본에서 공수해왔다. 선수 뿐만 아니라 경주 운영, 심판, 장비, 판정, 시설 등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없다. 2004년 한국을 떠난 뒤에도 매년 자신이 지도했던 제자 뿐만 아니라 인연을 맺었던 직원들의 경조사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고 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경정사업본부는 이런 구리하라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2년부터 '구리하라배 특별경정'을 시행 중이다.

21일 경기도 미사리 경정장을 찾은 구리하라 선생은 흐뭇한 표정으로 물살을 가르는 선수들의 레이스를 감상하고 있었다. 최근 암 수술을 받은 뒤 '시한부' 선고를 받은 구리하라 선생은 한국행 조차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엔 평온함 만이 감돌고 있었다.

-최근 건강이 좋지 않다고 들었다.

아직까진 괜찮다(웃음). 병원에 갔더니 앞으로 5년 간 살 수 있는 확률은 20%라고 하더라. 그런데 5년 정도 살 수 있을진 모르겠다(웃음).

-한국에서 매년 특별경주가 펼쳐지고 있는데.

내 이름을 딴 대회 뿐만 아니라 한국을 찾을 때마다 제자들이 만나러 와주는 게 기쁘고 고맙다. 올해는 체력이 안되어 만나지 못한 게 아쉽다(웃음). 내가 가르쳤던 제자들의 활약을 보는 게 즐겁다.


-처음 한국행을 결심한 이유는.

2001년 어느날 신문에서 '한국에 경정이 생길 지 모른다'는 기사를 봤다. 이후 주일한국대사관에 '내가 가서 경정 선수들을 가르쳐보고 싶다'고 편지를 보냈는데, 대사관에서 국민체육진흥공단을 소개해 줘 인연을 맺게 됐다.

-일본 경정계에서는 한국행에 반대했다고 들었다.

운전을 하려면 차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 그런데 처음 한국에 와보니 경정장은 물론 보트나 모터도 없었다. 일본에서 보트와 모터를 6대씩 들여와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고장이라도 나면 부품 구하는 게 일이었다. 주변에선 '차라리 일본으로 선수들을 데려와 가르치라'고 하더라. 내가 시작한 일인 만큼 한국에서 해보는 게 낫지 않겠나 싶었다.

-어떤 선수가 가장 기억에 남나.

사실 나는 자식이 없다. 그래서 제자들이 내 자식 같다. 내게는 전부 특별한 선수들이다(웃음).

-벌써 14년 째 대회가 열리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2013년에 김종민(1기)이 2착을 한 뒤에 펑펑 울더라(김종민은 그랑프리, 대상경주 모두 우승을 맛봤으나 구리하라배에서는 아직 우승 기록이 없다). 그게 기억에 남는다(웃음).

-그동안 지켜 본 한국 경정의 수준과 일본과의 차이점은.

한국 선수들이 기량은 일본의 60% 정도로 본다. 하지만 일본은 24개 경정장에서 자유롭게 연습이 가능하고, 개인 훈련장을 소유한 선수들도 있다. 한국 선수들이 같은 여건이라면 금방 일본 수준을 따라잡을 것이다.

-일본은 경정이 경마, 경륜 보다 활성화 되어 있다던데.

최근 일본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3300만명이 넘는다. 이들이 집에 있으면 아내가 '밖이라도 다녀오라'고 도시락을 싸주는데, 찾는 곳이 경정장이다.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는 경정 선수들의 모습은 스릴이 넘친다. 또 경정장에서 운동도 할 수 있어 선호도가 높다. 일본에선 베팅이 하나의 레저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경정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

경마와 경륜은 강한 말, 강한 선수가 승리한다. 그러나 경정은 선수 기량 뿐만 아니라 스타트와 전법, 보트, 모터 등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하는 스릴 있는 스포츠다. 강한 자만 이길 수 있는 경기가 아니라는 게 가장 큰 매력이라고 본다.

-한국 경정이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이라고 보나.

선수, 관계자들의 많은 노력에도 환경(소음) 문제로 새 경정장이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본 만큼은 아니더라도, 한 곳의 경기장만 더 생긴다면 선수들이 보다 자유롭게 연습하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펼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경정은 정말 매력적인 스포츠다.

하남=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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