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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신동빈, 명예회복 할까

신보순 기자

기사입력 2015-09-07 11:27




2011년 플레이오프 롯데와 SK의 3차전이 끝난 뒤 롯데 벤치를 방문한 신동빈 구단주. 인천=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기업 경영을 통해 국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고 사랑받는 SK기업으로 거듭 태어나겠습니다."

"롯데는 한국기업입니다. 개혁과 혁신으로 새로운 롯데로 거듭나겠습니다."

'몸이 두개였으면' 할 것 같다. 그래도 모자라 보인다. 정말 바쁘다. "거듭나겠다"는 마음에 급한 듯 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다.

사면복권 뒤 명예회복이 급하다. 최 회장이다. '왕자의 난' 뒤 이미지회복이 숙제다. 신 회장이다. 공통된 마음, 빠른 '회복'이다.

그러니 잠시도 앉아있을 수 없다. 공장으로 해외로, 바쁘다. 사회의 시선도 신경이 쓰인다.

SK그룹은 재계 순위 3위다. 롯데그룹은 5위다. 두 최고경영자(CEO)의 무게감이 크다. 당연히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과연 둘은 어떤 '회복'의 길을 만들까. 사회의 '불편한 시선'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SK vs 롯데

SK그룹의 모태는 선경직물이다. 1939년 조선의 선만주단과 일본의 경도직물이 합작해 만든 회사다. 1944년, 창업자 고 최종건 회장은 선경직물 수원공장 견습 기사로 입사했다.

해방 후 선경직물은 정부 재산으로 귀속됐다. 최 회장은 1956년 이 회사를 인수했다. 이후 발을 넓혀나갔다. 1966년 선경화섬(주), 1969년 선경합섬(주), 1970년에는 선산섬유(주)을 세웠다. 1973년 선경개발 설립, 같은 해 워커힐호텔을 인수했다. 1977년에는 선경직물이 선일섬유를 흡수 합병했다. 간판을 (주)선경으로 내걸었다.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 1994년에는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했다. 지금의 SK(주)와 SK텔레콤이다. 1998년, 선경그룹은 SK그룹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최태원 회장이 경영권을 이어받은 해다. 2012년에는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 SK하이닉스를 출범시켰다. SK그룹은 현재 국내 최다인 88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롯데그룹의 창업주는 신격호 현 총괄회장이다. 1948년, 일본에서 주식회사 롯데를 설립했다. 모국투자에 눈을 돌린 건 1967년이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가 계기가 됐다. 한국에 롯데제과를 세웠다. 본격적인 롯데그룹의 출발이다.

이후 몸집을 불려나갔다. 1973년 롯데호텔과 롯데기계공업, 롯데파이오니아, 1974년 롯데상사, 1978년 롯데햄과 롯데우유, 1979년 롯데리아와 롯데쇼핑을 세웠다. 1974년에는 칠성한미음료를 인수했다. 지금의 롯데칠성음료다. 1988년에는 롯데백화점 잠실점이 문을 열었다. 이듬해 롯데월드가 '오픈'했다. 2006년에는 우리홈쇼핑을 인수, 롯데홈쇼핑으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롯데그룹의 계열사는 총 82개다. SK그룹에 이어 2위다. 그런데 순환 출자구조가 복잡하다. 신격호, 신동빈 회장이 지분을 가진 롯데쇼핑을 중심으로 롯데쇼핑은 롯데카드, 롯데카드는 롯데칠성음료, 롯데칠성음료는 다시 롯데쇼핑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그 위에 호텔롯데가 주요 계열사들의 지분을 갖고 있다. 한국 롯데의 지주회사인 셈이다. 이 호텔롯데의 지분 대부분을 다시 일본 롯데홀딩스와 일본계 투자회사등이 보유중이다. 이 때문에 국적과 투명경영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글로벌 리더 vs 조용한 공격형

최 회장은 1992년 선경그룹 부장으로 입사했다. 경영기획실로 들어갔다. 1995년 이사로 승진했다. 1997년에는 SK주식회사 대표이사 부사장. 이때부터 경영권 승계작업이 본격화 됐다. 1998년 SK주식회사 대표이사 회장, 2011년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 2012년부터는 SK하이닉스 대표이사 회장도 겸임했다.

하지만 2013년, 재판장에 서게 됐다. 횡령 혐의로 징역 4년형을 받았다. 계열사로부터 497억원을 횡령한 혐의가 인정됐다.

다시 '빛'을 본 건 얼마 전이다. 8월14일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았다. 이후 하루 24시간이 모자란 '광폭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최 회장은 글로벌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듣는다. 2002년 세계경제포럼(WEF) 동아시아지역경제지도자회의 공동의장를 맡았다. 국내 인사로는 최초다. 2008년에는 '유엔 글로벌 콤팩트'(UNGC) 이사로도 선임됐다. 역시 국내 기업인 중 처음이었다. 2011년에는 하이닉스를 인수, '탈 내수'를 꾀했다. 결과적으로 이 인수작업은 '성공작'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

신 회장은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아오야마 가쿠인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고, 미국 컬럼비아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마쳤다.

그런데 시작이 이채롭다. 롯데가 아닌 일본 노무라증권 런던 지점으로 들어갔다. 1981년이다. 1988년에서야 일본 롯데상사 이사로 입사했다. 경험과 겸손을 배우라는 신 총괄회장의 뜻이었다고 한다.

한국 롯데에는 1990년 모습을 보였다. 호남석유화학의 상무로 취임했다. 이후 1997년 그룹 부회장에 올랐다. 후계자 경쟁에서 한발 앞서나간 시기라고 할 수 있다. 2011년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회장 취임전까지는 '은둔의 황태자'로 불렸다. 언론 노출을 극히 피했다. 공식석상에서도 여간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경영 스타일은 정반대라는 평가를 받는다. 과묵한 성격과 달리 적극적이고 공격적이다. 2004년 케이피케미칼과 한화마트, 우리홈쇼핑 등 많은 기업의 인수합병을 주도한 것이 그 방증이다. 2011년, 그룹 회장 취임 첫해에는 창사 이래 최대인 73조원의 매출도 올렸다.

사회적 책임 vs 투명한 정체성

두 총수의 최근 모습은 한마디로 정의된다. '광폭행보'다.

최 회장은 출소하자마자 본사로 출근했다. 3일 연속이다.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등 그룹 경영진으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았다. 청년 일자리 창출 방안과 46조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 계획도 세웠다. 다음날부터는 현장으로 뛰어나갔다. 대전 창조경제혁신센터, 충북 창조경제혁신센터 등을 찾았다. 이천 SK하이닉스 공장, SK이노베이션의 울산 석유화학 콤플렉스도 방문했다.

지난달 26일에는 중국으로 날아갔다.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과 우한 NCC 공장을 찾았다. 하루도 쉬는 날이 없는 강행군이다.

신 회장 역시 바쁘다. 지난달 17일 형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의 경영권 싸움에서 승리한 뒤, 연일 국내외를 오가고 있다.

곧바로 롯데의 '원리더'로 국내의 롯데케미칼, 롯데제과 등의 말레이시아·인도 현지 공장을 둘러봤다. 지난달 28일 귀국 뒤에는 국내 영업상황 전반을 점검하고 있다. 약 357억원의 사채를 털어 롯데제과 주식 1.3%(1만9000주)도 매입했다. 논란이 큰 그룹 지배구조 개선 작업의 하나다. 롯데 자이언츠 야구단을 직접 챙기겠다고도 밝혔다. 실추된 그룹 이미지 회복을 위해서다.

최 회장의 강행군은 우려가 큰 경영공백을 하루 빨리 메우기 위해서다. 여기에 국민과 정부에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이 뒤따른다. 신 회장은 경영권 분쟁의 후유증과 국민들의 '반 롯데' 정서를 잠재우기 위해서 뛴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최 회장은 2008년 SK 글로벌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었다. 그 때는 몇달 뒤 특별 사면됐다. 이번이 두 번째 사면이다. 그런만큼 사회적 도덕적 책임감이 무겁다.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실제 국민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신 회장은 풀어야 할 '투명성' 숙제가 산적해있다. 한국기업이라고 했지만, 롯데의 실제 지주회사는 광윤사, 일본 홀딩스 등이다. 일본쪽에 있다. 여기에 신 회장의 장남은 일본 국적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 여성과 결혼했다. 이러한 정체성을 국민들에게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신보순기자 bsshi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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