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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 부동산]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반쪽 개정…임차인 여전히 불안

송진현 기자

기사입력 2015-05-19 09:23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갑-을 관계'가 존재하는 대표적인 영역 중 하나가 상가 건물주와 세입자 사이다.

상가 세입자들은 '슈퍼갑'인 건물주에게 여러 가지 부분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일쑤였다. 때문에 대다수 세입자들은 "돈을 벌면 어떻게 해서든지 상가(혹은 건물)를 구입하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기도 하다.

정부는 이같은 영세 상가 세입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입법화 작업에 나서 지난 2001년 상가임대차보호법을 제정했다. 이후 세입자 보호 관점에서 정부 주도로 꾸준히 법 개정작업을 벌여온 상태다.

지난 12일에는 권리금을 인정하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보통 상가 세입자 간 주고받는 권리금은 시설물과 영업상 이점 등 유형·무형의 재산적 가치를 의미한다. 그런데 건물주의 횡포로 그동안 권리금을 한 푼 받지 못하고 가게에서 쫓겨나는 세입자들이 적지 않았다. 권리금은 법적으로 인정되지도 않았기에 더욱 세입자들의 피해가 컸다.

이번에 법 개정을 통해 법적으로 권리금의 존재를 인정하고 건물 임대인으로 하여금 세입자 간 권리금 수수행위에 방해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또 서울기준 환산보증금(보증금+월세×100)이 4억원을 초과할 경우 주인이 바뀌면 5년 간 영업기간 보호가 되지 않았으나 이 부분도 세입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건물주가 바뀌더라도 최초 임차시기부터 5년간 영업기간이 보장된 것.

세입자들은 국무회의 의결과 법 공포를 거쳐 오는 6월경 시행예정인 이번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법률을 대체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경기도 일산신도시에서 의류가게를 운영하는 이모씨(48)는 "그동안 음성적으로 주고받았던 권리금을 법의 테투리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것은 잘 되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장사를 한지가 15년 가까이 되는 이씨는 10년 전 1억원의 권리금을 내고 들어간 가게에서 주인의 횡포로 2000만원의 권리금만 회수하고 나와야 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건물 주인이 임대료를 대폭 인상하는 바람에 가게를 비워줄 수밖에 없었고, 권리금도 자연히 떨어져 새로 들어오는 세입자로부터 2000만원의 권리금만 받고 가게를 넘겨야 했다는 것이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모씨(52)는 "20여년간 서너 차례 가게점포를 바꿔가며 음식점을 하면서 권리금 때문에 늘 불안했다. 권리금을 못 받고 가게를 비워주면 어떻게 하느냐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이번에 법으로 권리금을 보장해 놓았다니 세입자 입장에선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개인적으로 권리금 피해를 본 적은 없으나 주변에서 건물 주인의 횡포로 권리금을 날린 경우를 수차례 목격했다. 대한민국에서 건물주들은 그야말로 슈퍼갑"이라며 앞으로도 정부가 세입자 보호에 더욱 힘을 써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동안 권리금의 입법화를 촉구해 왔던 상가 세입자들의 단체인 '맘상모(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모임)'와 참여연대, 민변 등 시민단체들은 이번 개정안에 미흡한 부분이 적지 않다며 국회에 조속한 법 개정 작업을 촉구하고 나섰다.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들을 점검해 본다.

임대인의 면책사유인 1년6개월 비영리 목적 운영은 적절한가

이번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법률에 따르면 임대인은 임대차 기간이 끝나기 3개월 전부터 임대차 종료 시까지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임차인으로부터 권리금을 지급받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만약 임대인이 방해를 할 경우 임차인은 임대차 종료 후 3년이 될 때까지 임대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①임차인이 주선한 신규 임차인이 보증금 또는 차임을 지급할 자력이 없는 경우 ②임차인이 주선한 신규임차인이 되려는 자가 임차인으로서의 의무를 위반할 우려가 있거나, 그밖에 임대차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③임대인이 상가건물을 1년6개월 이상 영리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 ④임대인이 선택한 신규 임차인이 임차인과 권리금 계약을 체결하고 그 권리금을 지급한 경우 등은 면책사유가 된다. 이때는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권리금에 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이 면책요건 중 논란이 되는 것이 임대인이 상가건물을 1년6개월 이상 영리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다. 가령 임대인이 상가건물을 종교시설로 사용하는 경우다.

그런데 이 조항을 악용할 경우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비영리 목적으로 사용하겠다며 권리금 없이 내보낸 뒤 1년6개월 간 상가를 비워둘 수 있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후 임대인 스스로가 새 임차인으로부터 권리금을 챙기고 상가를 새로 세놓을 수 있는 허점이 있다는 것이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맘상모 관계자는 "권리금 액수가 18개월 분 월 차임보다 현저하게 클 경우 임대인이 의도적으로 18개월 분의 월 차임을 포기하고 임차인을 권리금 없이 내쫓을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서울시내 상가 평균 권리금은 2014년 서울시 조사 시 9780만원으로 평균 월 차임 327만원보다 30배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 맘상모가 개정안 통과 후 회원들에게 긴급 조사를 실시한 결과 권리금은 평균 월세의 평균 53배로 나타났다. 실제 권리금 피해가 발생하는 지역은 권리금이 월세의 100배 가량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임대인들이 18개월 간 가게를 비워두는 방식으로 충분히 욕심을 낼 수 있을 법한 이유다.

전통시장은 권리금 보호대상에서 왜 빠졌나

이번 상가보호법 개정안에 따르면 권리금 보호 적용 예외조항을 뒀다. 즉 임대차 목적물인 상가건물이 유통산업발전법 제2조에 따른 대규모 점포 또는 준대규모 점포의 일부인 경우에는 권리금이 법으로 보장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유통산업발전법 2조에서 대규모 점포는 면적이 3000㎡ 이상의 대형마트와 백화점, 쇼핑센터, 복합쇼핑몰, 전통시장 등이다.

중소기업청 자료에 따르면 면적 3000㎡ 이상의 전통시장은 서울 광장시장과 부산 국제시장 등 전국에 250여 곳에 달하는 것으로 돼있다. 적용 예외규정은 당초 정부가 마련한 안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국회 논의과정에서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은 건물주인 대기업이 건물의 건축은 물론이고 이후에도 모든 시설을 일괄 관리하기 때문에 권리금 예외지역에서 제외되는 것은 수긍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통시장은 다르다는 평가다. 상가 세입자들이 전통시장 활성화에 기여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번에 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됨으로써 법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황숙희 명지대 부동산학과 겸임교수는 "전통시장이 권리금 보호대상에서 왜 제외되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전통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영세 세입자이고 일반 상가들처럼 권리금도 존재하는데 법이 이 점을 간과한 것 같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도 "전통시장 250여곳이 법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법 시행과정에서 쓸데없는 시장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조속한 법 개정을 통해 전통시장을 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킬 것을 촉구하고 있다.

환산보증금 4억원 초과할 경우에는 월세를 제한하지 않아도 되나

그동안 건물주들은 상가 세입자들을 권리금 없이 내쫓기 위해 월세를 대폭 올리는 수법을 사용하곤 했다.

사례를 들어보자. 지난 2011년 전 직장에서 명예퇴직한 박모씨(54)는 1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2012년 서울시내의 한 역세권에 점포를 얻어 주점을 오픈했다. 보증금 1억원, 월세 350만원의 조건에 주인과 2년간 계약을 하고 이전 세입자에게는 2억원의 권리금을 지불했다.

박씨의 경우 환산보증금은 4억5000만원으로 상가임대차보호법상 월세 상한선(연 9%)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서울지역의 경우 환산보증금이 4억 이하일 경우에만 월세인상이 제한된다.(수도권 3억, 광역시 2억4000만원, 그밖의 지역 1억8000만원)

박씨는 창업초기 갖은 고생 끝에 그런대로 자리를 잡았으나 2년간의 계약 종료시점에 주인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월세를 700만원으로 2배 인상하겠다고 통보받은 것.

박씨는 건물주를 찾아가 "월세 700만원을 내고서는 도저히 장사를 할 수 없다"며 읍소하다시피 했지만 주인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 계약종료와 함께 권리금을 포기한 채 가게를 비워줘야 했다. 월세 700만원을 내고 장사를 하겠다는 세입자를 구할 수 없었던 것.

서울시내 역세권과 대로변 상가들은 대부분 환산보증금이 4억원을 초과한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번에 상가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하면서 권리금 보호가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환산보증금이 4억원을 초과할 경우에도 월세 상한선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이런 부분이 개정안에 반영되지 않음으로써 환산보증금이 4억원을 넘는 가게들은 실질적으로 권리금 보호혜택을 보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건물주가 마음만 먹으면 월세를 대폭 올려 세입자들을 합법적으로 내보낼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환산보증금이 4억원 이하일 경우에도 연간 월세 상한선 9%도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은행의 실질적인 이자가 1% 시대에 상가 임대료로 연간 9%까지 올릴 수 있다는 것은 현 시장상황에 비춰 상가 세입자들을 옥죄는 규정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송진현 기자 jhso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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