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섬에 깃들어 살아온 제주도민들의 삶의 궤적을 음미해 볼 수 있는 여행코스가 새롭게 선보였다. 지난 주말(25일) 오픈한 '김녕-월정 지질트레일'이 그것이다. 제주도가 2010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된 이후 제주에 펼쳐진 '산방산 용머리해안 지역', '수월봉 지역'에 이어 세 번째로 개통된 코스이다. 이번 트레일은 용암으로 뒤덮인 척박한 땅에 적응하며 삶을 일궈온 제주사람들의 체취와 생활상을 고스란히 접할 수 있는 길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따라 펼쳐진 올레길에서는 미처 맛볼 수 없었던 소중한 가치 또한 만날 수가 있다. 제주인의 '라이프& 스타일'에 젖어 들 수 있는 가치 있는 여정을 따라 발길을 옮겨 보았다.
제주=글사진 김형우 여행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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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선보인 '김녕-월정 지질트레일'을 걷게 되면 제주의 속살을 제대로 만날 수가 있다. 척박한 용암대지 위에 일궈낸 제주인들의 삶의 터전은 주민들의 생생한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지문에 다름없다.
2010년 제주도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된 이후 앞서 선보인 '수월봉 지역'(고산1,2리, 용수리)과 '산방산 용머리해안 지역'(사계리, 화순리, 덕수리) 트레일 등 두 곳은 제주의 지질 역사와 경관에 초점이 더 맞춰진 코스다. 반면 '김녕-월정 지질트레일'은 제주인들의 삶의 원형을 담아내려는 콘셉트가 강하다. 화산 분출 시기 때부터 거친 지질을 어떻게 이겨내며 삶을 지켜왔는지, 그 생존의 역사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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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적인 삶의 의지 '빌레왓'& '흑룡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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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월정 지질트레일'에는 '바당밭, 빌레왓을 일구는 동굴 위 사람들의 이야기 길'이라는 부제가 따른다. '바당'과 '빌레'는 제주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반영하는 키워드다. '바당'은 '바다'의 제주도 방언이다. 경작할 땅이 부족한 마당에 바다의 소중함은 더했다. 특히 용암이 바닷속으로 흘러들어가 만들어낸 얕은 바다 '조간대'는 '멜(멸치)'이 서식하는 천혜의 환경이었다. '빌레'는 용암이 흐르다 식은 평평한 현무암 바위지대다. 그 깊이가 수십㎝부터 2m 가까이 쌓인 불모지에 다름없다. 제주 사람들은 이처럼 척박한 터전위에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 빌레를 걷어내야만 했다. 그리고 비로소 만든 밭, 빌레왓에 메밀, 고구마 등 구황작물에 당근과 콩 등을 심었다. 캐낸 현무암 덩어리로는 바람막이 돌담을 쌓았다. 김녕-월정 트레일에서 만나는 들판, 마을에 유독 아름답고 긴 돌담이 펼쳐진 이유이다.
그 아름다움을 '흑룡만리(黑龍萬里)' 제주 들녘을 휘감아 도는 검은 용에도 비유했다. '김녕밭담길' 초입에는 주민들이 진(긴)빌레정을 세웠다. 정자에 오르면 제주에서도 원형이 잘 남아있다는 밭담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동굴 위에 집을 짓고, 밭을 일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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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빛 물색을 자랑하는 김녕 바닷가는 밀물때에도 물이 얕다. 용암이 흘러 펼쳐놓은 빌레가 넓게 형성된 '조간대'다. 썰물 때에는 바닥이 드러난다. 물 빠진 빌레 위에서는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를 잡는 '고망낚시'를 즐기고, 해조류를 채취(바릇잡이)한다.
바닷가 민물 목욕탕 '청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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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폭포가 없는 김녕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솟는 물을 돌담으로 가둬 물맞이 장소로 활용했다. 청굴물이 그것이다. 솟아나는 맑은 물로 민물 목욕을 즐긴 셈이다. 청굴물은 가운데 돌담을 쌓아 남녀구분해서 사용했다. 바당쪽은 남자, 마을 쪽은 여자가 썼다. 10월 하순,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동네아이들이 청굴물에서 목욕을 즐기고 있었다. 제 아무리 제주도라고는 하지만 늦가을의 청굴물은 차갑게만 느껴지는데 아이들은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한쪽 청굴물에서 낚시를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은 제법 진지해 보인다.
용암이 빚은 언덕 '투물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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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의 반환점은 월정리다. 요즘 제주에서 가장 뜨는 여행지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해변에는 운치 있는 카페 등이 있어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바닷가에는 용암이 빚은 언덕 '투물러스'가 펼쳐져 멋진 풍광을 자아낸다.
제주 관광공사 김녕-월정 지질트레일 길 열림행사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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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열 제주관광공사 사장은 "발걸음 아래에 용암동굴이 있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김녕-월정 지질트레일은 제주도의 자연에 깃들어 살아온 이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지문에 다름없다"며 "제주도의 내력과 속살을 담은 김녕-지질트레일이 지속가능한 제주도의 소중한 관광자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행메모
가는 길 =제주공항~일주동로~김녕사거리에서 좌회전, 마을길에서 우회전~김녕어울림센터
묵을 곳=지오하우스 1호, 2호점이 문을 열었다. 제주 농가를 개조한 숙소로 김녕과 월정 지역의 지질 구조와 문화 등을 모티브로 인테리어를 했다. 취사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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