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순위 22위인 부영그룹은 지난 4월과 5월, 연이어 쇼킹한 뉴스를 만들었다. 4월에는 '오너가 폭탄 배당', 5월에는 '통큰 연봉 인상'이 화제였다. 거침없는 행보 뒤에 맨주먹으로 재벌이 된 이중근 회장(73)이 있다. 하지만 기습적인 연봉 인상이 과다한 배당금 챙기기로 불거진 내부 불만을 상쇄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곱지않은 시선이 있다. 이 회장은 최근 모교인 건국대에 80억원을 들여 인재개발원을 지어 기증하고, 세월호 피해자에게도 20억원을 내놓은 등 평소 기부를 많이 해 '기부천사'로 통한다. 그럼에도 지난 2011년부터 3년간 한 해 이익보다 훨씬 많은 배당을 받아가면서 그동안 해왔던 이 같은 '선행'마저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상황에 빠져 들었다.
최근 3년간 돈 빌려 현금배당?
지난해 부영그룹 계열사인 광영토건의 감사보고서는 한술 더 뜬다. 광영토건의 지분은 이 회장(91.67%)과 이 전무(8.33%) 두 부자가 전부 가지고 있다.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7억6700만원인데 100억원을 현금 배당했다. 이 돈은 전부 이 회장 부자가 나눠가졌다. 이익 대비 배당 성향이 1303.76%로 국내 최고였다. 일반적인 상장회사의 배당 수준은 이익금의 20% 안팎이다. 이 외에도 이 회장은 대화도시가스에서 당기순이익(82억원)보다 많은 104억원을 배당받았다. 또 동광주택산업 84억원, 부영대부파이낸스 5억원 등 지난해 배당금만으로 모두 360억원을 넘게 받았다.
이중근 회장은 지난해 비상장 배당금 부자 1위였다. 전 계열사가 비상장 회사이기도 하지만 배당 폭이 꽤 컸다. 지주회사 부영의 배당을 두고는 말이 많다. 부영은 총 98억원을 배당했는데 실제 임대수익 등만 있을 뿐 자금원이 부족하다. 올해 부영주택에서 100억원을 빌리는 등 쌓인 단기차입금만 715억원이나 된다. 부영주택(696억원), 동광주택(19억원) 등이다.
부영은 2011년에도 70억원을 배당하고, 2012년에도 98억원을 배당했다. 보유현금이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그때마다 외부 차입금을 들여왔다. 부영주택에서 2013년 4월 86억원, 2013년 5월 57억원을 조달해 왔다. 최근 3년간 이 회장은 부영에서만 현금배당으로 235억원을 받았는데 이 시기에 대규모 차입이 있었다.
부영 내부에선 '차입금은 단순한 경영자금이다. 적법한 절차를 걸쳐 차입했고, 배당과는 무관하다. 또 올해 배당은 2대 주주인 기획재정부의 요청에 의해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는 2008년 증여세 납부과정에서 부영 주식을 소유하게 됐다. 기획재정부가 3억1700만원을 받기 위해 배당을 재촉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이 회장에게 91억원을 주게 됐다는 설명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이고 책임전가나 다름없다.
부영그룹은 광영토건의 '폭탄 배당'에 대해선 지난 10년간 배당을 하지 않다가 한 번에 배당한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7억6700억원이었지만 2012년 회계연도까지 이익잉여금이 324억원 이상 쌓여있었다는 것. 주주가 이 회장 부자 두 명에 불과한 것도 문제지만 이 회장이 이 배당을 받는 것이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 회장은 2004년 비자금(270억원) 조성과 세금 포탈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사건 시점인 2002년 이중근 회장은 광영토건의 지분 3.5%를 취득했다. 그 전에는 이 전무(지분 8.33%)와 동생 이신근 동광종합토건 회장(11.49%), 동서 이영권씨(24.58%)가 최대주주였다. 법원 판결 이후 이 회장은 2011년부터 다시 경영 일선에 나서 2011년 7월 광영토건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지난해 10월 25일 광영토건 지분 구도는 바뀌었다. 이 회장이 동생과 동서의 지분을 더해 모두 91.67%의 지분을 확보했다.
지분 구조 변경 사유는 명의신탁 해지다. 타인 명의였던 광영토건 주식을 자기 이름으로 바꾼 것이다. 주주가 바뀌고 나서 광영토건은 10년 치 배당을 한꺼번에 몰아서 했다. 이 회장은 배당을 받은 직후인 지난 1월 자신의 지분 중 49.39%를 매각해 현재는 지분을 42.28%로 낮췄다.
재계에서는 부영의 지배구조 재정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부영 계열사 중 친인척 명의로 돼 있던 계열사 주식은 이 회장이 본인 명의로 바꿔 지분율을 높이고, 내부거래 문제 소지가 있는 가족 소유의 회사는 부영의 주력 계열사가 인수 중이다. 이 과정에서 거액의 세금이 발생해 대규모 현금배당이 필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영, 대기업군 중 상장사 유일하게 '제로'
부영은 지난해말 기준으로 자산규모 15조7000억원으로 재계 22위권(민영화된 공기업 제외)에 랭크됐다. 지속 성장세다.
지주회사 부영 외에도 부영주택·동광주택산업·동광주택·광영토건·남광건설산업·남양개발·부영씨씨·부영환경산업·무주덕유산리조트·대화도시가스·부강주택관리·부영엔터테인먼트·부영대부파이낸스 등 14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 회장은 1970년대 건설사를 세워 중동진출을 했다가 폐업했다. 이후 1983년 부영주택을 세운 뒤 임대주택사업을 통해 큰 성공을 거뒀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부영그룹 계열사는 한 곳도 없다. 총수가 있는 재벌그룹 중에선 부영이 유일하다.
회사가 기업공개(IPO)를 통해 상장이 되면 투자자들은 주식을 믿고 거래할 수 있다. 회사는 은행에서 필요자금을 차입하지 않고 증자나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자금을 모을 수 있다.
상장이 되면 회사는 사업보고서 공시 등을 통해 투자자에게 회사 내부 사정을 설명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규제를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상장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국내 재벌그룹의 계열사 상장 비율이 15%에 불과한 것은 여전히 문제로 지적된다. 일부 재벌그룹은 비상장 회사들을 계열사로 편입해 손쉬운 사업확장을 하고 내부거래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상장사보다는 비상장사가 주주 감시가 소홀할 수밖에 없다. 이때문에 비상장사를 통해 총수 일가는 더 쉽게 고액 배당을 받는다. 이른바 오너의 사금고로 전락하는 셈이다.
소비자인사이트/스포츠조선=박재호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