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징금 폭탄 맞은 담합 제지회사와 공정위 줄다리기 시작?

박재호 기자

기사입력 2013-12-31 14:17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과자·의약품 등 소형제품 등의 포장재로 사용되는 백판지 가격을 담합한 5개 업체(한솔제지, 깨끗한나라, 세하, 신풍제지, 한창제지)에 과징금을 부과했다. 한발 더 나아가 법인과 담합에 직접 가담한 영업임원을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

과징금 규모는 총 1056억원에 달하고 검찰 고발에 따른 후폭풍도 예고 된다. 공정위는 수차례 시장경제 '공공의 적'으로 담합을 지적한 바 있다. 이번 발표에서는 백판지에 대한 담합만 거론됐지만 공정위는 제지업계 전반에 걸쳐 포괄적인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5개 제지사는 2007년 3월 판매가격 인상을 위한 합의부터 2011년 10월 가격인상을 위한 합의까지 총 17차례에 걸쳐 백판지 판매가격을 담합했다.

백판지는 과자류나 의약품, 화장품 등 소형생필품 및 과일-농산물 등의 포장재에 주료 사용되는 종이다. 고지를 주원료로하는 일반백판지와 펄프를 주원료로 하는 고급백판지로 구분된다. 지난해 시장규모는 약 5600억원이라고 공정위는 밝혔다.

공정위는 이들 5개사가 2007년도 3차례, 2008년도 3차례, 2009년도 4차례, 2010년도 5차례, 2011년도 2차례, 총 17회에 걸쳐 일반백판지 및 고급백판지의 기준가격을 인상하거나, 거래처에 적용하는 할인율 폭을 축소하는 방법 등으로 판매가격을 담합했다고 지적했다.

담합에 가담한 5개 백판지 제조사는 일반백판지 시장의 90% 이상, 고급백판지 시장의 65%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담합이 비교적 쉬웠던 것으로 판단된다.

2000년 이후 국내 백판지 시장이 설비과잉으로 초과공급 상태에 이르게 되고 이로 인한 판매경쟁이 본격화되자 5개 백판지 제조업체는 경쟁을 회피할 목적으로 담합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초과공급의 경우 자연스런 가격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이들 5개사는 담합을 통해 인위적으로 가격 하락을 저지하거나 가격 인상을 기획했다.


공정위는 2007년 8월 동업계 팀장모임의 회의록까지 증거자료로 공개했다. 회의록에 따르면 할인율의 경우에도 단순히 축소하는 경우와 할인할 수 있는 최대 상한선을 정하는 등 구체적 담합이 이뤄졌다.

백판지 담합은 본부장 모임 · 팀장모임으로 계층별 담합체계가 구성되어 있었으며, 주로 본부장 모임에서 기준가격 인상 폭, 축소할 할인율 등을 정하면 팀장모임에서는 이를 더욱 구체화하고 상대방 회사의 이행여부를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지정된 간사회사가 합의를 위한 회합을 통보하고 참석여부를 확인하였으며, 불참하는 회사가 있는 경우는 회합 후에 간사회사가 유선으로 연락하여 합의내용을 알려주고 담합에 동참시켰다는 것이 공정위의 판단이다.

할인율 축소를 하거나 상한선을 정할 때 각 백판지 업체별 브랜드력을 고려, 5개사가 모두 시장에서 적정한 물량을 판매할 수 있도록 업체별로 차등을 두는 방법으로 상호불만을 최소화하고 수년 간에 걸친 담합을 유지해왔다.

합의한 내용대로 인상하지 않고 상대방을 속이는 경우에는 강력히 항의하는 등으로 담합의 실행력을 제고했다. 사정이 있어 회합에 불참하는 회사는 간사 회사가 합의를 알려주고 동참시키기도 했다.

공정위는 이번 담합 적발에 큰 의의를 두고 있다. 담합의 전형인 다양한 형태의 합의, 이행감시수단, 합의체계 전모를 시초부터 종료까지 밝혀낸 대표적인 사례라고 자평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앞으로도 경쟁을 직접적으로 제한함으로써 소비자의 후생에 영향을 미치는 담합행위는 과징금 부과와 함께 형사처벌을 위한 검찰 고발조치 등 엄중한 제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과징금은 한솔제지가 356억원, 깨끗한 나라가 324억원, 세하가 179억원, 신풍제지가 53억원, 한창제지가 143억원이다.

이중 과징금 규모가 가장 큰 한솔제지는 행정소송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솔제지측은 30일 '백판지 시장은 기본적으로 공급과잉 시장으로, 내수 경쟁이 매우 치열해 생산량의 50% 이상을 수출해야 하기 때문에 답합이 어려운 구조다. 부과된 과징금 규모로 봤을 때 고급 백판지 등 담합 혐의와 무관한 제품군까지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또 '공정위의 최종 의결서 수령 후 내부적으로 법리검토를 거쳐 행정소송 등 법적대응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행정소송이 벌어지면 공정위와 제지사들간의 치열한 법리공방이 예상된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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