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그룹 세인트포CC 사태 무엇이 문제인가

최만식 기자

기사입력 2013-12-15 15:43


세인트포골프장 전경. 사진제공=세인트포골프장

한라그룹의 주력사 (주)한라(옛 한라건설)가 계열사였던 회원제 골프장 처분을 놓고 '대기업 횡포' 논란에 빠졌다.

문제의 골프장은 제주도 북제주군 김녕리에 있는 세인트포골프장이다. 지난 2007년 골프&리조트 전문업체 에니스가 개장한 이 곳은 36홀에 콘도미니엄까지 갖춰 '한국 10대 뉴코스'로 선정되고 코리아 마스터레이디스오픈 등 비중있는 대회를 치른 주목받는 고급 골프장이었다.

하지만 제주지역 골프장 과밀화와 2010년 세계 재정위기의 악재를 맞으면서 경영난에 빠졌다.

이 골프장 시공을 맡아 거액의 미수 공사비 채권이 물려있던 한라는 2010년부터 골프장 경영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게 됐다. 당시 한라와 에니스가 체결한 '주주간 계약서'에 따르면 에니스의 대표이사와 이사 선임은 물론 ▲주주총회 안검 및 이사회 안건 ▲주식보유 상황의 변동에 관한 사항 ▲외부 감사인의 선임 등까지 한라의 협의를 거치도록 했다.

이를 토대로 한라는 3년여 동안 에니스를 통해 세인트포골프장의 경영에 관여했지만 만성적인 적자 행진을 막지 못했고, 골프장에 물린 돈은 2000억원 가량으로 되레 늘었다.

결국 한라는 에니스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했고, 에니스는 골프장에 대한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지난 10월 기업회생 계획안을 법원에 제출했다. 그러자 골프 회원권 소유자 등 소액 투자자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대기업이 기업회생을 악용해 소액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려고 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한라의 기업회생안을 살펴보면 선량한 투자자와 회원권 소유자들은 투자액을 보장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이 골프장의 회원권 규모는 700여명 1300억원에 이른다.

현재 비대위 측에서도 최근 자체 기업회생안을 제출한 상황이다. 현재 한라와 비대위 등 양측의 입장은 크게 상충된다.


우선 한라는 골프장 경영자가 아닌 거대채권자라고 강조하며 실질적 경영 책임에 대한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에니스의 방만한 경영을 더이상 두고 볼 수 없어 견제 수단이자 더이상 부실 방지책으로 관여하게 된 것이지 골프장을 접수할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라는 '주주간 계약서'에 따른 골프장 경영 참여가 공정거래법상 계열 편입 요건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명나 지난해 계열 편입을 한 적이 있다. 현재는 기업회생 절차로 인해 계열사 제외신청을 한 상태다. 한라는 부실경영을 견제하는데 집중하다보니 '주주간 계약서' 조건이 계열 편입 사유가 되는지 여부를 간과했다고 설명한다.

더불어 기업회생안에 회원권 액면가 100% 보장을 약속했기 때문에 회원들이 우려하는 대로 회원권 투자금을 떼일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비대위는 한라가 채권자이기에 앞서 채무자의 책임이 더 크다고 강조한다. '주주간 계약서'를 계기로 한라가 실질적인 골프장 경영자였다는 사실은 그동안 진행된 경영 행위를 보면 명백하고 증거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같은 주장에 대해서는 한라 측도 계열 편입 사실이 있기 때문에 강하게 항변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비대위는 막상 골프장 처지가 악화되자 경영 책임은 덮고 책권자임을 부각시켜 투자금을 먼저 회수하려는 것은 대기업의 윤리가 아니다라고 항변한다.

비대위는 한라의 회원권 액면가 100% 보장에 대해서도 믿지 못한다. 한라의 기업회생안에 따르면 회원권은 기업회생 개시 후 4년 거치한 뒤 5년째부터 10년간 분할 변제받도록 돼있어 한라가 먼저 거대채권을 빼가면 회원권 소유자에게 돌아갈 몫이 없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특히 이번 사태에서 핵심은 신탁 문제다. 현재 골프장 부지 50만평과 배후지 80만평 등 에니스의 주요 자산은 신탁회사에 소유권 등기가 돼 있고, 신탁우선수익권자 1순위는 한라다.

신탁우선수익권은 기업회생 개시시 모든 채무와 함께 동결되는 담보권과 달리 기업회생과 별개로 공매 등을 통해 처분할 수 있다. 비대위측에서 한라가 신탁권을 행사해 골프장 공매 자금으로 채권을 먼저 빼내갈 경우 회원들은 빈손이 되는 것을 걱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라측은 "공매 처분을 하려고 했으면 벌써 실행에 옮겼지 왜 지금까지 온갖 오해를 사면서까지 안하고 있겠냐"면서 "기업회생 절차가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공매 처분을 할 계획은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상대적 약자인 회원권 소유자들은 구두상 약속을 믿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비대위는 "한라가 진정성이 있다면 신탁자산을 담보권으로 전환해 주든지, 공매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기업회생안에 명문화하면 되는 것 아니냐"면서 "한라가 자신들의 채권액 감축에 인색하면서 소액 투자자들의 큰 희생을 나몰라라 하는 것은 너무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더불어 비대위는 "그동안 한라는 소액 채권자들과 제대로 협의도 없이 일방 통행을 한다. 대화를 통해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자"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한라는 "에니스의 방만 경영은 너무 심했고, 말 못할 사정도 있다. 우리도 피해자인 것은 사실"이라며 억울함을 나타낸 뒤 "소액 채권자들의 바람대로 공매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더 구체화하는 방안은 내부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세인트포골프장 사태는 한라와 비대위 측이 마주보고 달리는 기관차와 같은 형국이다. 다음달 예정된 기업회생안 조정 등을 앞두고 상생의 미덕을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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