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주주총회(이하 주총)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막을 내렸다. 올해는 경영2~3세의 약진이 가장 눈에 띄는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경영 3세가 기업 경영 전면에 나섰고, 오너일가 대부분이 사내·사외 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과연 그럴까. 주종 의안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면 사실은 조금 달라 보인다. 좋은기업지배연구소(소장 김선웅)의 2012 대기업 주총 의안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오너일가 체제는 확고해졌다. 다만 책임은 축소됐다. 정관변경안에 '이사의 책임 감경'과 '재무제표의 이사회 결의 승인' 을 포함했다. 오너일가의 권한은 강화하고 책임은 축소 시켰다는 얘기다.
이사의 책임 감경은 기업 경영 중 투자 실패 등 문제가 발생하면 사내이사가 연봉의 6배에서 손해 배상을 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눈여겨 볼 점은 강제적 조항이 아니란 것이다. 기업의 선택에 따라 문제를 제기 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나마 고의적이거나 자기이익을 위해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는 게 입증되지 않으면 적용되지 않는다.
재무제표의 이사회 결의 승인은 배당결정 권한을 이사회가 갖는 것을 뜻한다. 주주 배당 관련 문제를 오너일가가 쥐락펴락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오너일가 체제의 사내이사가 구축된 상황에서 배당 등 주주 권리를 요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좋은기업연구소에 따르면 이사의 책임 감경과 재무제표의 이사회 결의 승인 안을 변경한 기업은 대한항공, 대우건설, 한진해운, KCC그룹, 효성그룹, STX그룹, CJ그룹, 농심, 글로비스, 한진해운홀딩스 등 35개 기업(자산 1조 이상 76개사 기준)에 달한다.
좋은기업지배연구소 관계자는 "1767개의 상장회사 중 40%가 올해 주총에서 정관변경안을 상정했고, 이사 책임 경감 조항을 삽입한 회사는 전체 상장사의 43%, 재무제표 이사회 결의 승인 조항을 삽입한 회사 비중은 37.2%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주주권리 보호를 위한 해결책은 없을까. 경제전문가들은 대기업 지분을 갖고 있는 연기금운용체에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주주 이익을 위해 적극적인 의견을 피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경영진이 제시한 안건을 수동적으로 따르기만 해선 주주권리를 포기하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 불합리한 안건 제지 등의 노력은 주주 권리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민연금은 포스코와 대림산업의 이사 책임 경감 조항과 재무제표 이사회 결의 승인 조항의 정관개정에 반대의견을 피력, 개정을 저지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글로벌 경제 상황이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서 주주 권리 행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며 "연기금운용체와 개인 주주 등이 주주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