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 in 골프]세계골프계는 지금..왕년의 스타가 돌아왔다

정현석 기자

기사입력 2018-04-30 17:53 | 최종수정 2018-05-01 06:00


물세례 받는 장하나. 제공=KLPGA

투어골퍼에게 일요일은 통상 파이널 라운드가 열리는 승부의 날이다.

일요일이었던 29일(현지 기준)도 어김없이 최종 승부가 펼쳐졌다. 치열한 승부 끝에 장하나(26) 리디아 고(21·뉴질랜드) 양용은(46)이 한·미·일 삼국에서 우승을 신고했다.

장하나는 경기도 양주 레이크우드cc에서 열린 시즌 첫 메이저대회 크리스 제40회 KL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시즌 2승째, 개인 통산 10승째를 달성했다. 양용은은 일본 나고야 골프클럽(파70·6557야드)에서 열린 일본프로골프(JGTO) 더 크라운스에서 역전 우승하며 일본 통산 5승째를 달성했다. 리디아 고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레이크 머세드 골프장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디힐 챔피언십에서 이민지(호주)와 연장승부 끝에 통산 15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나란히 우승한 세 선수의 공통점? 소위 왕년에 잘 나가다 주춤했던 선수들이라는 사실이다. 시기 차이만 있었을 뿐 슬럼프를 겪었다. 그래서 이날 우승이 더욱 같했던 선수들이다.

장하나는 지난달 베트남에서 열린 KLPGA투어 한국투자증권 챔피언십에서 897일(2년 5개월 13일)만에 국내 복귀 첫승을 신고했다. 양용은의 우승 기억은 그야말로 까마득 하다. 2010년 10월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코오롱 한국오픈 이후 7년 6개월 만이다. JGTO에서는 2006년 9월 산토리 오픈 이후 11년 7개월 만에 거둔 5승째였다. '천재소녀' 리디아 고는 스무살까지 무려 14승을 거뒀지만 2016년 7월 20일 마라톤 클래식을 마지막으로 우승이 뚝 끊겼다. 리디아 고는 이번 대회에서 652일 만에 우승을 차지하며, 천재의 귀환을 알렸다.

세계를 주름잡던 황제와 여제도 돌아왔다. 타이거 우즈(43)와 박인비(30)다. 여러 구설수와 부상 속에 '이대로 끝나나' 했던 우즈는 세간의 예상을 비웃듯 예전의 모습으로 미국남자프로골프(PGA) 무대에 컴백했다.

'골든 그랜드슬래머' 박인비도 부상을 극복하고 돌아왔다. 지난달 19일 LPGA투어 뱅크 오브 호프 파운더스 컵에서 1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데 이어 메디힐챔피언십 이전 3개 대회 연속 우승경쟁을 펼치는 등 꾸준한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2년 반만에 세계랭킹 1위 자리도 되찾아왔다.


DALY CITY, CA - APRIL 29: Lydia Ko of New Zealand reacts after making an eagle to win the Mediheal Championship at Lake Merced Golf Club on April 29, 2018 in Daly City, California. Matt Sullivan/Getty Images/AFP
== FOR NEWSPAPERS, INTERNET, TELCOS & TELEVISION USE ONLY ==

정상을 경험한 자가 더 힘들다


골프 처럼 도구를 쓰는 스포츠일 수록 슬럼프는 느닷없이 찾아와 가혹하게 선수를 파괴한다. 잘 나가던 톱 클라스 선수가 하루 아침에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는 경우는 셀 수 없이 많다. 최고를 경험한 선수에게 슬럼프는 도전중인 선수들에 비해 더욱 가혹하다. 믿기 힘든 황당한 현실을 쉽게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바심에 무리하게 되고 가까스로 잡은 우승 찬스도 부담감에 날리는 악순환 덫에 걸리기 십상이다.

나도 문제지만 남도 문제다. 안될 때는 오래 걸리더라도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언론의 섣부른 분석이나 쉽게 툭 던지는 주위의 사소한 격려가 되레 슬럼프 중인 선수에게는 큰 짐이 되기도 한다.

장하나는 "솔직히 작년에는 부담이 있었다. 주위에서 '복귀 했으니 우승 빨리 해야지'하는 말들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고 털어놓았다. 리디아 고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우승 후 "사람들이 '이래서 또는 저래서 우승을 못하는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래서 (이번 우승이) 큰 안도감을 준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천재소녀가 슬럼프에 빠지자 온갖 억측이 쏟아졌다. 목표 상실의 번아웃, 새로운 코치와 스윙 문제, 심지어 부모의 간섭 등 가족문제까지 언급됐다. 리디아 고는 연장승부 끝에 우승을 확정한 뒤 끝내 눈물을 흘렸다. 힘들었던 시간들이 응축돼 흘러내렸다.

가장 나쁜 건 포기다. 아무리 많이 성공했더라도 마지막 순간 포기하면 그는 실패자다. 반대로 아무리 많이 실패했더라도 마지막 순간 성공하면 승자로 기억된다. 결국 골프도 인생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틸 수 있는 정신적 스태미너가 중요하다. 포기하지 않는 자가 궁극의 승자다. 결국 어떻게 버텨내느냐의 문제다. 양용은은 "슬럼프는 조바심과 겹쳐 온다. 어떤 선수든 슬럼프가 와도 '괜찮다'는 자기암시 속에 잘 버티고 잘 견뎌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LOS ANGELES, CA - APRIL 21: Inbee Park of South Korea reacts to her shot as she leaves the seventh tee during round three of the Hugel-JTBC Championship at the Wilshire Country Club on April 21, 2018 in Los Angeles, California. Harry How/Getty Images/AFP
== FOR NEWSPAPERS, INTERNET, TELCOS & TELEVISION USE ONLY ==ⓒAFPBBNews = News1
그룻도 마음도 비워야 채워진다

2009년 타이거 우즈를 꺾고 아시아 선수 중 유일하게 PGA 메이저 우승을 달성한 양용은. 그는 30일 귀국 후 가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그 땐 참 아무 것도 모를 때라 그냥 놀면서 쳤어요. 마지막 라운드를 앞두고 퍼팅연습을 하는 데 조금 떨리더라구요. 그래서 속으로 '어차피 질건데 뭐 때문에 떠냐'고 속으로 이야기했어요. 첫 티박스로 이동하는데 거짓말 처럼 하나도 안 떨리는거 있죠. 18홀 내내 연습 라운드 처럼 편안하게 쳤어요." PGA 메이저대회, 그것도 타이거 우즈와의 맞대결보다 29일 일본투어 최종전이 더 떨렸다. "거의 8년만에 어떻게 잡은 우승 기회인데 싶은 생각이 드니 긴장되더라고요. 그래도 나도 이렇게 긴장되는데 한번도 우승을 못한 쟤(아키요시 쇼타)는 얼마나 긴장되겠나 하는 생각으로 쳤습니다."

장하나는 지난해 같은 대회에서 6타 차 선두를 지키지 못하고 장수연에게 역전패 했다. 올해는 2타차 선두를 지켜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이번에는 불과 2타 차여서 긴장될 법했는데 친구인 캐디가 '우승 못해도 괜찮으니 다른 선수 신경쓰지 말고 네가 치고 싶은대로 쳐보라'고 한 말 덕에 편안하게 전반을 쳤다"며 "같은 조 동반선수를 의식하면 무조건 실패한다. 다른 선수 플레이 신경 안쓰고 어떤 영향도 받지 않았다. 오직 목표인 16언더만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박인비도 프로 데뷔 후 2009년부터 4년간 슬럼프를 겪었다. 지난해에는 부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를 다시 일으킨 것은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이었다. 골프 외에는 남편 남기협 코치와 애완견 리우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골프도 즐겁게 치려 노력한다. "목표만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몸 여기저기가 아프게 된 게 아닌가 후회가 되더라고요. 골프 외에도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들이 무언지 고민하며 살려고 합니다."

잘하려는 조바심을 내려놓고 현재를 즐기는 순간 선물처럼 우승이 찾아왔다. 슬럼프를 탈출한 선수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다. "요새 부담감이 없어요. 원하는 목표에 집중하다 보니 목표대로 쳐서 우승하든 못하든 하늘의 뜻이란 생각이에요."(장하나) "욕심이 결국 스스로를 망가뜨리더라고요. 이제는 편안하고 즐겁게 조금 놀면서 칠 수 있게 됐습니다."(양용은)

정상을 경험해본 자는 안다. 높은데서 떨어지는 추락의 아픔을… 몸부림 칠 수록 더 깊게 빠지는 수렁의 암담함을… 먼 길을 돌아와 거울 앞에 서니 결국 내 자신과 해결해야 할 문제만이 남아 있었다. 답은 내 안에 있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스포츠조선 바로가기[스포츠조선 페이스북]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