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개 대회 정도면 사고 한번 칠 것 같습니다."
행운의 바람
배상문은 20일(한국시각) 미국 텍사스주 어빙의 포시즌스TPC(파70·7166야드)에서 열린 마지막날 최종합계 13언더파 267타로 우승을 차지했다. 메이저대회인 PGA 챔피언십을 포함해 PGA 투어 통산 3승을 올린 '실력파' 키건 브래들리(미국)를 챔피언조에서 접전을 펼친 끝에 2타차로 제쳤다. 2008년과 2009년 한국프로골프투어 상금왕에 올라 국내 무대를 제패한 배상문은 2011년 일본 무대에서도 상금왕을 차지했다. 이어 2012년 미국의 문을 두드린 배상문은 도전 2년째에 PGA 투어 첫승을 기록하는 기쁨을 누렸다. 우승 상금은 117만 달러(약 13억원). 한국 국적 선수로는 최경주(43), 양용은(41)에 이어 세번째로 PGA 투어 정상에 올랐다.
이날 골프장엔 강풍이 불어 선수들을 괴롭혔다. 그러나 배상문에겐 오히려 행운의 바람이 됐다. 엎치락 뒤치락 레이스를 펼치던 배상문과 브래들리는 17번홀(파3)에서 운명이 바뀌었다. 1타차로 아슬아슬하게 앞서 있던 배상문의 아이언 티샷이 짧았다. 그린 앞 워터해저드로 공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뒷바람이 불어줬다. 볼은 간신히 물을 건너 그린 앞에 떨어졌다. 배상문은 침착하게 칩샷으로 공을 홀에 붙여 파 세이브를 했다. 배상문의 샷이 짧게 떨어지자 브래들리는 처음에 잡았던 아이언을 바꾸었다. 한 클럽 길게 잡은 브래들리의 샷은 핀을 훌쩍 넘어 뒷쪽에 떨어졌다. 브래들리의 칩샷은 핀을 5m 지나서 멈췄다. 파퍼트를 놓친 브래들리는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이 상황에 대해 배상문은 "티샷을 한 뒤 짧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바람이 밀어줘서 살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우승에 앞서 PGA 투어에서 가장 좋은 성적은 준우승이다. 지난해 3월 PGA 투어 트랜지션스 챔피언십에서 연장전 접전 끝에 우승컵을 놓쳤다. 루키 시즌인 지난해 배상문은 혼자서 PGA 투어를 돌았다. 일본에서 호흡을 맞췄던 캐디와 함께였다. 선수와 캐디 모두 PGA 투어 경험이 전혀 없었다. 스윙 코치도 없었다. 자신의 감만을 믿었다. 한계가 있었다. 샷에 대한 점검이 필요했지만 봐 줄만한 사람이 없었다.
배상문은 캐디를 바꾸었고, 전문 스윙코치와 계약했다. 필 미켈슨(미국), 비제이 싱(피지), 맷 쿠차(미국) 등을 지도한 릭 스미스를 전담 스윙코치로 뒀고, 닉 프라이스(짐바브웨)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베테랑 맷 미니스터를 새 캐디로 영입했다. 배상문은 "나도 엉뚱한 면이 있는데 스윙코치도 정말 엉뚱하다. 서로 농담도 많이 하는데 스윙에 대한 이야기도 잘 통한다. 재미있다"고 말했다. 이어 "내 스윙은 어느 정도 기본 틀은 잡혔으나 PGA 투어에서 뛰는 프로의 스윙은 아니었다"며 "새로 만난 스윙 코치 덕분에 페이드샷이나 드로 샷을 만족스럽게 날릴 수 있을 만큼 한 두 단계 성장했다"고 우승의 공을 스미스 코치에게 돌렸다.
이번 대회 우승으로 배상문의 상금 랭킹은 지난 주 108위에서 17위(159만2794달러)로 껑충 뛰어올랐다. 페덕스컵 랭킹에서도 지난주 보다 77계단 상승한 18위(769점)에 이름을 올렸다. 아울러 오는 2015년까지 2년동안 PGA 투어 풀시드를 얻었다.
|
배상문은 대구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광팬이었다. 특히 '국민타자' 이승엽(37)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래서 꿈도 프로야구 선수였다. 하지만 배상문은 여덟살이던 지난 94년 야구 방망이 대신 골프채를 쥐었다. 어머니인 시옥희씨(57)가 아들을 골퍼로 키우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꿈을 바꾸었지만 배상문은 이승엽과 인연을 맺었다. 프로야구 코치 출신으로 골프 레슨 프로인 유백만씨가 배상문에게 이승엽을 소개 시켜줬다. 열살 차이인 이들은 꼬마팬과 형으로 만나 친분을 이어갔다. 배상문이 프로가 된 이후엔 이승엽에게 골프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배상문은 "승엽이형은 야구하기를 잘 했다"며 이승엽의 골프실력은 아직 멀었다며 웃었다.
배상문은 넉넉하지 않은 경제 사정 탓에 태극마크 한 번 달지 못했다. 하지만 특유의 장타와 타고난 승부 근성, 정교한 퍼터를 앞세워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2006년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에머슨퍼시픽오픈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배상문은 승승장구했다. KPGA 투어에서 7승을 쌓았고, 2008년과 2009년엔 상금왕에 올랐다. 이듬해 일본으로 진출한 배상문은 2011년 일본프로골프투어(JGTO)에서 3승을 수확하면서 상금왕을 차지했다. PGA 투어 Q(퀄리파잉)스쿨 삼수 만에 2012년 미국에 입성했다.
신창범 기자 tigge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