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 첫 승 나상욱, 골프천재의 아메리칸 드림

박재호 기자

기사입력 2011-10-03 12:50 | 최종수정 2011-10-03 12:50


◇재미교포 나상욱. 스포츠조선 DB


골프에서 우승은 영어로 'WIN'이다. 우승자는 Winner, 나머지는 Loser(실제로 패배자란 표현을 쓰진 않지만)다. PGA(미국프로골프) 투어에서 2위나 3위를 해도 수억원의 큰 상금이 주어지지만 이들은 결코 승자가 아니다. 그만큼 골프에서 우승은 특별하다.

재미교포 나상욱(28·미국명 케빈 나)은 우승을 해도 벌써 했었어야할 선수였다.

나상욱은 3일(한국시각) PGA(미국프로골프) 투어 가을시리즈 첫 대회인 저스틴 팀버레이크 슈라이너스 아동병원 오픈에서 우승한 뒤 울컥했다. 현지 중계방송 현장 진행요원이 우승 인터뷰를 위해 마이크를 들이대자 '휴'하고 한숨부터 내쉬었다. 지난 날이 떠올랐다. 그는 어릴 때부터 '골프 천재' 소리를 들었다. 1983년 9월 서울에서 태어나 8세 때 온 가족이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민을 갔다. 이듬해 골프채를 잡았는데 끼가 남달랐다. 3년만에 미국주니어아마추어선수권 본선에 최연소로 진출했다. 이후 아마추어 시절 미국내 각종 주니어 대회와 아마추어 대회에서 무려 100승 넘게 거뒀다. 나상욱은 2001년부터 타이거 우즈의 스윙코치였던 부치 하먼에게 스윙지도를 받았다. 최고 선수만 상대하는 하먼이 어린 나상욱의 발전 가능성을 익히 꿰뚫어본 셈이다. 나상욱은 2003년 20세(그해 최연소)로 PGA투어 큐스쿨을 통과하며 탄탄대로에 걷는 듯 했다. 금방이라도 PGA 투어 우승이 손에 잡힐 것 같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번 대회 이전까지 210차례 PGA 투어 대회에 출전했으나 준우승만 세 번을 했다. 28차례 톱10은 나상욱을 더욱 조바심나게 했다. 우승 조바심은 잘 나가던 그를 막판에 흔들었다.

이날 우승 뒤 나상욱은 "지금까지 2위에 머무는 악몽만 꿨다. 어머니에게 '정말 열심히 노력하면 내가 언젠가는 우승을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기도 했다. 긴 세월 동안 나 자신보다 주위에서 나를 더 믿어주신 것 같다"며 감격해 했다. 백혈병 투병중인 부친 나용훈씨의 병세도 한결 좋아져 겹경사다.

가을시리즈가 비록 상위랭커들은 빠지고 총상금과 우승상금이 일반 대회의 60%에 불과하지만 엄연한 정규 투어 대회다. 이날 합계 23언더파로 우승한 나상욱을 막판까지 쫓은 2위 닉 와트니(미국·합계 21언더파)를 비롯해 폴 고이도스, 벤 크레인, 부 위클리, 브라이언 게이(이상 미국), 닉 오헌(호주), 트레버 이멜만(남아공) 등 PGA 투어 고수들이 다수 출전했다. 나머지 선수들도 죄다 PGA 투어 멤버다.

나상욱은 이날 79만2000달러(약 9억원)의 우승상금을 받았다. 시즌 상금은 225만달러(약 26억5000만원)로 생애 최고액을 돌파했다. 지난해와 2009년 모두 200만달러를 넘겨 확실한 상승세다.

290야드에 이르는 티샷과 정교한 아이언샷, 퍼팅은 투어 정상급으로 손색없는 나상욱이다. 마지막 남은 걸림돌은 우승을 손에 쥘 수 있는 담력이었다. 일단 우승 물꼬를 텄기 때문에 향후 또 다른 우승도 기대된다. 이번 여름 시도한 스윙 교정이 효과를 봤고, 무엇보다 퍼팅이 효자였다. 올시즌 라운드 당 퍼트 수가 27.7개로 투어 전체 2위다. 퍼트는 정신력 싸움의 잣대다. 나상욱이 심리적으로 더 단단해졌음을 보여준다. 재미교포지만 나상욱은 한국말을 완벽하게 구사한다. 한국말이 서투른 앤서니 김(한국명 김하진)이 재미교포 2세라면 나상욱은 1.5세 정도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