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안동고 까까머리가 'K리그 사냥개'가 되기까지, 여봉훈 우여곡절 스토리

윤진만 기자

기사입력 2020-01-23 07:00


◇여봉훈. 사진=광주FC

[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제가 봐도 스토리가 있다."

여봉훈(26·광주FC)은 축구선수로서 꽃다운 스물여섯의 나이에 웬만한 베테랑 못지않은 경험을 쌓았다. 광주가 5번째 클럽이다. 2014년 안동고 졸업 이후 스페인 2부 AD 알코르콘에 입단한 그는 3년여 동안 이베리아 반도에 머물며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2~3부 소속 마리노 데 루안코(스페인), 질 비센트(포르투갈), 빌라베르덴세(포르투갈) 등에서 뛰었다. 여봉훈은 "그 시절 정~말 힘들었다"고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털어놨다. "스페인 축구 하면 기술을 떠올릴 테지만, 실제로 2부 리그는 피지컬이 첫 번째다. 부딪혀 싸워 이겨내야 했다. 힘겨웠다. 내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2015년 11월 올림픽 축구대표팀에 깜짝 발탁되며 조명을 받았던 여봉훈은 별다른 임팩트를 남기지 못한 채 서서히 팬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그러던 어느 날, 여봉훈의 축구인생을 바꿀 기회가 찾아왔다. 2017년 1월 포르투갈로 전지훈련을 떠난 남기일 당시 광주 감독이 포르투갈 3부에서 뛰던 여봉훈에게 테스트를 제안한 것이다. 그 이전에도 한 차례 테스트를 봤지만 당시엔 '즉시전력감으론 부족하다'고 판단했던 남 감독이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여봉훈은 "한창 시즌 중이어서 구단에 거짓말했다. 급하게 한국 돌아갈 일이 생겼다고 말이다. 그렇게 남쪽 끝까지 기차를 타고 달려갔다"고 돌아봤다.

테스트는 성공적이었다. 테스트 이튿날, 오스트리아 1부팀과 친선경기에서 남 감독의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여봉훈은 "그 한 경기에 내 모든 걸 걸었다. 죽기 살기로 뛰었다. 상대선수 3명 정도 실려 간 것 같다. 농담이고, 간절한 모습을 남기일 감독님께서 좋게 봐주신 것 같다. '구단과 계약해지하고 와라, 광주로 가자'고 하셨다. 구단에 가서 사정사정했다. 받은 돈 돌려놓고 가라고 하길래, 300만원(5개월 임금) 조금 안 되는 돈을 허름한 봉투에 넣어 전달했다. 불쌍해 보였는지 한국 갈 때 여비로 쓰라고 돌려주더라"라고 말했다.


"올림픽 대표팀에서 '강철체력'이라고 홍보가 됐는데, 후반전 도중 쥐가 났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여봉훈은 입단 첫 시즌 K리그1에서 31경기를 뛰었고, 챔피언 전북 현대를 상대로 데뷔골까지 터뜨렸다. 감독이 남기일-김학범-박진섭으로 바뀌는 과정에서도 살아남았다. 비결은 '사냥개 정신'. 여봉훈은 "스페인에서 축구를 배웠지만, 패스보단 많이 뛰고 부딪히는 데 자신이 있다. 타고난 것도 있지만, 안동고에서 죽을 때까지 뛰는 훈련을 한 덕인 것 같다. 머리를 짧게 밀고, 속옷만 입고 뛰었다. 겨울 바다 입수는 기본이었다. 아시아 챔피언십에서 활약 중인 정승원(대구)도 안동고 출신이라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방과 몸싸움을 펼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부상자가 발생한 적도 있다. 2017년 당시 FC서울에서 뛰던 이명주가 여봉훈과의 충돌로 발목을 다쳤다. 올해 광주에 합류한 베테랑 김창수와 측면 수비수 박준희는 여봉훈을 보자마자 과거 심하게 부딪혔던 일을 떠올렸다고 한다.

"포털 사이트에 제 이름을 검색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영상이 (김)창수형과 부딪히는 장면이다. 두 형과 이렇게 만날 줄 몰랐다.(웃음) K리그1로 승격한 올시즌에도 스타일을 바꾸진 않겠지만, 박진섭 감독님께선 파울, 경고를 조심하라는 조언을 많이 해주신다. 영리하게 수비하고, 영리하게 공을 찰 줄 알아야 한다고도 하셨다. 가슴속에 새기고 있다. 팬들은 오해할 수도 있는데 경기장 밖에선 순둥이다. 서울에서 온 임민혁과 김정환도 처음엔 내 성격이 실제로 그런 줄 알았는데, 실제로 전혀 달라 놀랐다고 하더라.(웃음)" 별명을 묻자 "'무등산 진돗개'라고 불러주시더라"고 답했다. 옆에 있던 광주 홍보팀 관계자는 "사냥개"라고 말을 보탰다. '모두 개와 관련된 별명'이라는 기자의 말에 여봉훈은 "얼굴도 개상"이라며 방긋 웃었다.

여봉훈은 광주에서 K리그1과 K리그2를 모두 경험한 몇 안 되는 선수다. 올시즌 주장 여 름을 보좌할 부주장으로 시즌에 임하게 된 그는 "절대로 다시 떨어져선 안 된다. 광주의 강점인 끈끈한 조직력만 발휘된다면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개인적으로도 K리그1 복귀 무대가 기대된다. 그사이 경험도 많이 쌓였고 여유도 생겼다. K리그1은 확실히 레벨이 다르다. 설레고, 긴장된다. 부주장이 된 만큼 책임감도 남다르다"고 말했다. 승격팀 광주는 내달 13일까지 태국 치앙마이에서 전지훈련에 임한다.


사진=광주FC

사진=광주FC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2020 신년운세 보러가기

눈으로 보는 동영상 뉴스 핫템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