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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칠레전 프리미엄 S존 티켓, 35만원이 남긴 의미

김가을 기자

기사입력 2018-09-12 17:30 | 최종수정 2018-09-13 05:30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지난 11일, 대한민국과 칠레의 친선경기가 펼쳐진 수원월드컵경기장. 선수단 벤치 바로 뒤로 아주 특별한 좌석이 마련됐다. 대한축구협회가 A매치 최초로 도입한 23석 한정 '프리미엄존S'. 어마어마한 혜택을 품고 있다. 프리미엄존S 구매자에게는 대표팀 유니폼이 주어졌다. 대표팀 라커룸과 그라운드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국가대표 버스에도 착석하는 기쁨을 누렸다.

끝이 아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을 포함, 선수들과 단체 사진을 찍었다. 무엇보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선수들을 보며 함께 호흡할 수 있었다.

모두가 앉고 싶어 하는 꿈의 좌석. 그러나 아무나 앉을 수는 없다. 가격대가 만만치 않기 때문. 프리미엄존S 좌석 가격은 무려 35만원에 달했다. 칠레전 최저가 좌석인 레드존과 3등석이 2만원인 것과 비교하면 무려 17.5배나 높은 금액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프리미엄존S 티켓은 오픈과 동시에 매진됐다. 23인석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인터넷 '광클'을 해야 할 정도였다.

'압도적 지분', 여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과연 어떤 팬들이 프리미엄존S 좌석을 차지했을까. 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20대 15명, 30대 6명, 10대 2명이 행운의 주인공이 됐다.(단, 구매자와 착석자는 다를 수 있음) 성비는 여성이 압도적이었다. 23명 중 무려 21명이 여성이었다. 남성은 단 2명에 불과했다. 프리미엄존S에 앉은 남성팬 두 명은 "자리를 잘못 잡은 것 같다"며 머쓱해 했다.

한국 축구의 흐름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사실 그동안 한국축구의 중심은 남성이었다. 여성이 접근하기에는 진입장벽이 다소 높아 보였다. 하지만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여성들은 삼삼오오 모여 경기장으로 향한다. 그래서 프리미엄존S에 앉은 여성 팬들에게 물어봤다. '대체 '왜' 35만원을 주고 이 좌석을 선택했나요?'

선수와 호흡하고 싶어요

가장 큰 이유는 단연 선수들과의 호흡이었다. 이윤정씨(20)는 "월드컵, 아시안게임 등 큰 대회 경기는 봤지만, A매치 직관은 처음이다. 손흥민 선수를 좋아하는데,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다만 너무 순식간에 지나간 일이라 아직 믿기지는 않는다"며 '호호' 웃었다.


협회도 팬과 선수의 소통을 위해 프리미엄존S를 기획했다. 협회 관계자는 "팬들은 선수들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에서 만나고 싶어 한다. 선수들 역시 팬들과 더 많은 소통 기회를 갖길 원한다. 팬과 선수간 스킨십을 늘리자는 취지에서 준비한 특별 좌석"이라고 전했다.

함께 호흡한다는 것만으로도 투자 가치는 충분했다. 오효정씨(27)는 "35만원이 결코 만만한 금액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다른 부분을 줄여서라도 꼭 투자하고 싶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전에서 왔다는 유서윤양(17)은 "용돈을 모으고 모아서 왔다. 부족한 부분은 부모님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그냥 손을 벌린 것은 아니다. 부모님과 몇 가지 약속을 한 뒤에 돈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가족의 영향으로 축구에 입문했다는 진보경씨(25) 역시 친구와 함께 경기장을 찾았다. 특이한 것은 프리미엄존S를 선택한 이유가 함께 온 친구의 권유 때문이라는 것. 옆에 앉아 있던 최정은씨(26)는 사실 축구에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등을 통해 자연스레 선수들에 관심을 갖게 됐다. "월급을 털어서 왔다. 사실 35만원은 내게도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하지만 선수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매우 끌렸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다양한 접근 방식, 팬들을 끌어 모은다

물론 칠레전 프리미엄존S 이용자는 매우 소수다. 섣불리 일반화 하기에는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축구를 소비하는 팬이, 방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축구장 뉴커머, 여성 팬들이 한국 축구에 마음을 열게 된 계기와 과정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주희양(16)은 "손흥민 선수를 정말 좋아한다.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보면서 팬이 됐다"며 손에 들린 플래카드를 자랑스럽게 흔들었다.

박하늘씨(21)는 "기사는 물론이고 협회에서 제공하는 영상을 많이 봤다. 보니까 재미있고, 관심이 생기니 챙겨보게 되는 것 같다. 특별한 좌석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손흥민과 황의조 선수를 보고 싶어서 현장에 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협회가 올리는 많은 영상과 콘텐츠들이 팬들 사이에서 확대 재생산 되고 있다.

축구를 잘 알고 모르고가 중요한게 아니다. 호기심을 자극하고, 축구경기 직관이 SNS 상의 깨알 자랑거리가 되는걸로 충분하다. 침체일로였던 야구인기 부흥의 중심에는 여성팬들이 있었다. 그들이 또 한번 움직이고 있다. 메가 트렌드가 조금씩 축구장으로 옮겨오고 있다. 어렵게 시작된 여성 팬심을 축구장에 머물도록 모든 축구인들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여성 팬에게 한국 축구가 친절하게 느껴지는 순간, 이들은 기꺼이 마음의 문을 연다. 마음이 열리면 지갑도 열린다. 그들 곁에는 남성 팬이, 그리고 어린이 팬이 았다. 여성팬들의 동반자 시너지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한국 축구의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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